1996년 8월 13일 오후 7시 서울 신촌 연세대 캠퍼스가 1만여명에게 점거됐다. 학교 측 반대를 무릅쓰고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을 강행하려는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경찰을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전야제와 개막식을 열었다.

1주일간 연세대는 '종북좌파 운동권'의 해방구가 됐다. 마침내 경찰이 헬리콥터로 최루탄을 살포하며 진입하자 학생들이 투항했다. 연행된 학생은 5000여명, 그중 구속자는 460명이었다. 완전히 파괴된 연대 종합관은 그대로 보존돼 역사적 기록물로 남게 됐다.

한총련 사태 후 좌파 운동권은 몰락했다. 학교와 정부가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인데, 그 주역이 당시 학생처장인 한상완(韓相完·71) 전 연세대 부총장이다. 한 전 부총장은 "신성한 교육의 장(場)을 파괴하는 세력과 타협은 없다"는 태도를 굳게 지켰다.

당시 이런 모습에 반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그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나섰다. 정계 은퇴 후 영국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 뒤에도 '삼고초려'했지만 한 전 부총장은 "교육자는 정치권 외도보다 학문 외길을 파야 한다"며 소신을 지켰다.

한상완 전 연세대 부총장이 시인으로 새 삶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다. 연대 학술정보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시화전에서 한 전 부총장이 자신이 쓴 시‘달맞이꽃’앞에 서 있다.

그런 한 전 부총장이 시인(詩人)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대학에서 정년을 맞은 뒤인 2009년 10월 고 박목월 선생이 창간하고 그의 아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어받은 시 전문지 '심상(心象)'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登壇)한 것이다. 그는 그해 첫 시집 '편지'를 냈으며, 지난 5일 두 번째 시집 '그대는 나의 별'을 내고 지난 10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연대 학술정보관 1층 갤러리에서 시서화(詩書畵)전을 열고 있다.

이채로운 건 시인의 시를 형상화한 화가, 서예가와 얽힌 아름다운 인연이다. 이번에 그림 30여점을 출품한 정현식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역시 은퇴 후 미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 한 전 부총장과 같고, 서예가인 일속(一粟) 오명섭 역시 한 전 부총장이 전남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0년대부터 교우해오고 있다.

한 전 부총장은 종북좌파 운동권에 단호하게 대응한 것에 대해 "집안에 얽힌 비극적 역사 때문"이라 했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그는 3대 독자였으며 할아버지는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인근을 지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 대지주였다.

그러다 6·25전쟁이 일어났고, 할아버지는 '반동'으로 몰린 반면 고모부는 당진군 인민위원장이 되는 등 집안이 좌우로 갈렸다. 이런 갈등 과정에서 가산이 모두 날아갔다. 이후 그는 여러 고생 끝에 인천 제물포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도서관학과(문헌정보과)에 들어가 한국 사서학(司書學)의 대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