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the godmother), 코카인 여왕, 어둠의 과부, 죽음을 부르는 천사.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렸던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 거래상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콜롬비아 일간지 엘 티엠포는 4일(현지시각) 콜롬비아 경찰청을 인용해 "'코카인의 여왕' 그리셀다 블랑코(69)가 전날 거리를 걷던 중, 오토바이를 탄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로부터 머리에 총격을 받고 살해당했다"고 전했다. 콜롬비아 경찰 당국은 "아직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블랑코의 증언을 두려워 한 타 조직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블랑코는 지난 1970~1980년대 콜롬비아와 미국 마이애미에서 마약 밀매로 악명을 떨쳤다. 1975년 30명의 조직원과 함께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잡힐 당시, 그의 조직이 밀거래한 코카인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고 마이애미 헤럴드는 전했다. 블랑코는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을 통해 콜롬비아에서 생산된 코카인을 대량으로 미국에 들여왔다. 감자에서 속옷, 신체의 일부까지 마약을 운반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이 거래처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대상을 거리낌 없이 살해하기로 유명했다. 플로리다 주 경찰청은 이런 방식으로 블랑코와 그의 조직이 살해한 사람이 25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총을 쏘는 방식은 블랑코가 즐겨 쓰는 방식이었다. 블랑코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던 방식 그대로 암살당한 셈이다.

그는 결국 경쟁 조직의 암살 시도와 경찰의 눈을 피해, 미국 전역으로 숨어다니다가 지난 1985년 캘리포니아 주 외곽에서 붙잡혔다. 이후 지난 2004년 콜롬비아로 강제추방 당할 때까지 19년을 복역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조직을 이끌고, 마약 사업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롬비아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에 따르면 그는 평소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대부(the godfather)'에 나오는 마피아 우두머리 돈 콜레오네를 동경했다. 자신을 돈 콜레오네와 동일시해 '대모'로 불리길 원한데다, 막내아들의 이름을 극 중 돈 콜레오네의 아들 이름과 같은 마이클 콜레오네로 지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돈 콜레오네와 달리 부하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의 전 조직원 중 한명은 엘 콜롬비아노와의 인터뷰에서 "조직 내부에서도 적이 많았던 블랑코가 지금껏 살아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며 "그는 밑의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죽이곤 했다"고 밝혔다. 오로지 공포를 이용해 조직을 운영했다는 것. 그를 사로잡은 미국 마약단속국은 당시 보고서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문화권에서 여성이 마약조직의 보스로 군림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며 "의심과 공포를 이용해 조직을 지배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이애미 지역 검찰은 "블랑코가 투옥 중에도 최소 3명 이상의 부하들을 살해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블랑코는 지난 2004년 출옥한 이후에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왔다.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 인근에 별장을 마련해놓고 쉬고 있다는 이야기만 간혹 들릴 뿐이었다. 그가 나온 마지막 사진은 2007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공항에서 찍힌 것이다. 이날 메데진 경찰청은 "블랑코가 노후에도 계속 범죄활동을 저질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출옥 이후 이웃들에게는 자상한 할머니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언론에 따르면 4일 열린 블랑코의 장례식에는 그의 이웃과 먼 일가친척 100여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그는 3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모두 살해당하거나 실종됐다. 4명의 아들 중 막내인 마이클을 제외한 나머지 3명도 상대조직의 총에 숨졌다.

한때 마약 여왕으로 불렸던 그가 남긴 재산은 2층 집 한 채와 일본산 소형차 한 대가 전부였다. 콜롬비아 일간지 비벨로오이는 "블랑코의 죽음은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란 격언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