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특히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살인죄에 버금가게 해야 한다는 게 국민 일반의 인식이다. 작년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국민 1000명, 법률전문가(판사·검사·변호사·법학교수) 90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38%가 '아동 강간'과 살인을 똑같이 처벌하자고 했고, 26.1%는 아동 강간을 더 무겁게 처벌하자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살인죄 처벌이 더 무거워야 한다는 응답이 61.1%였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성범죄자(추행 포함)가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한 반면, 전문가들은 10명 중 8명이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반 국민과 법률전문가들의 이 같은 인식의 괴리는 성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온정적 판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또 피해 여성에게도 '성범죄를 야기한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식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초범·반성·합의

성범죄자 판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양형요소는 초범·반성·합의이다. 대검찰청이 2010년 12월 이민식 경기대 교수 등에게 발주한 '양형기준 시행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 교수가 분석한 13세 이상 강간(성폭행) 판결 386건에 등장한 양형요소(형을 가중하거나 감경하는 요인) 중 감경요소로 가장 빈도가 높았던 것은 진지한 반성(152건), 초범(104건), 처벌 불원(합의·64건) 순이었다. 가중 요소로는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140건), 계획적 범행(118건) 순이었다. 반성·초범·합의는 세 가지가 복합돼 집행유예 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작년 6월 정모(48)씨는 가게에 사탕을 사러 온 K(12)양의 등 뒤로 가서 5분간 몸을 만지다가 적발됐다. 전주지법은 올 초 정씨에게 "12세 피해자가 큰 정신적 충격을 입어서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정씨가 반성한다 △부모와 합의했다 △전과가 없다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작년 2월 서울중앙지법은 1996년과 2001년 두 차례 성폭행(강간) 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비를 달라'는 13세 소녀를 집으로 데려가서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만지게 한 혐의로 다시 기소된 서모씨에게 "재범 위험성이 낮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해 논란이 됐다.

'나주 초등생, 급성스트레스 반응… 정신과 치료 병행'… 전남 나주 성폭행 피해 초등생 A(7)양의 주치의인 주재균 전남대 교수(대장항문외과·왼쪽)와 송은규 전남대병원장이 3일 오후 전남대병원에서 A양의 현재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양은 복막 상처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한 시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불안감 등을 포함한 급성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있어 소아정신과 치료를 함께 받을 예정이다. 의료진은“재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입원 기간은 2주로 예상된다”고 했다.

올해 3월 서울 관악구 한 노래방에서 김모(24)씨와 김씨 친구들과 함께 놀던 신모(20)씨 등은 김씨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자 모텔에 데려가 성폭행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은 신씨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다른 사람들에겐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적극 거부 안 해서…"

드물긴 하지만 일정부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 판결도 있다. 작년 여름 서울중앙지법은 자신의 체육관에 다닌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합기도 관장 문모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문씨는 1998년 성범죄로 소년부 송치 처분을 받은 일이 있는 사람이었다. 판결문에는 "체육관 관원들과 유대관계를 높이기 위해 신체접촉을 했을 때 피해자들이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고 오인했을 수 있다"는 부분이 포함됐다. 문씨는 13세 여학생들을 무릎에 앉히고 신체 일부를 더듬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