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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박성원 소설집 | 문학과지성사 | 242쪽 | 1만2000원

3시 55분. 주차장은 만차였다. 전세금 송금을 위해 여자는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은행으로 뛰었다. 갓난아이를 카 시트에 놔둔 채였다. 은행 문이 닫힐지 모르는 다급한 시간이었고,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에게 겨울의 눈보라를 맞히기 싫었다. 4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한 소년이 쌓인 눈을 발로 차며 골목을 지나갔다. 소년은 화가 나 있었다. 국어 시간에 그는 놀림감이 됐다. 난독증. '가을'을 '거울'로, '마치겠습니다'를 '미치겠습니다'로 읽었으니 그럴 수밖에. 골목에서 소년은 업무에 충실하던 한 견인차량 기사를 만난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년에게 기사의 농담 한마디. "뭘 그렇게 보니? 네 이마에 붙여주랴?" 부아가 치밀은 소년은 잠시 뒤에 전봇대에 붙은 종이 한 장을 떼어낸다. 종이엔 '견인대상차량 고지서'라고 적혀 있다. 고지서를 읽으며 발음을 연습하던 소년은 달려오던 여자와 부딪혀 넘어진다. 고지서는 바닥에 떨어졌고, 여자는 "미안하다"며 다시 부리나케 자신의 차를 향해, 아이를 향해 뛰어간다. 4시 29분의 일이었다.

박성원(43·사진)의 단편 '하루'는 현미경 같은 정밀함으로 관찰하고 고발한다. 우리 모두는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할 뿐인데, 세상은 왜 점점 더 살기 나쁜 곳으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선생은 열심히 가르쳤을 뿐이며, 견인기사는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여자는 남편에게 전세보증금을 부쳐야 했을 뿐이었다. 구조조정 실행 업무를 맡고 있던 여자의 남편은 그날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곱 명의 직원에게 해고 통지를 해야 했다. 그중에는 난독증을 앓고 있던 소년의 아버지도 있었다. 남편은 말한다. "나를 원망 말게.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니." 난독증 소년의 아버지는 퇴근 후 대취하고 눈을 맞으며 잠이 든다. 그가 대취할 무렵, 겨우 몇㎞ 떨어진 곳에서 갓난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오열한다. 뒤늦게 견인차량 보관소에서 차 유리창을 깨고 아이를 찾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비극이 일어난 다음이었다. 견인차량 기사는 어쩔 줄 모른다. "정말입니다. 차 안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애를 키웁니다. 연말이라 비상대깁니다. 저는 그저 제가 맡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합리성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모두 '합리적 괴수'로 변해가는 과정을, 작가는 너무나도 냉정하게 적고 있다. 표제작을 포함, 7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작가에게는 해당되지는 않는 명제다. '하루'를 읽고 나면, 작가의 다른 세계가 너무도 궁금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