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한국인이 돼서 감개무량하오. (중국인으로 죽었으면) 독립운동 하신 할아버님 얼굴을 무슨 낯으로 뵐 수 있었겠소."

13일 법무부로부터 독립운동가 자손임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13명의 중국 동포〈본지 8월 14일자 A11면〉 중 1명인 허종윤(72)씨는 14일 "처음으로 한국인으로 광복절을 맞게 됐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독립운동가 허주경 선생 손자인 허종윤씨가 14일 오후 충남 서산시 자택에서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정하는 국적 증서를 들고 태극기를 어루만지고 있다.

허씨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허주경 선생의 손자다. 허주경 선생은 1880년 무렵 태어났으며,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함경북도 회령군과 중국 젠다오(間島) 지역 일대에서 활동했고, 1920년 10월 27일 회령군에서 독립운동가들과 그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군에게 피살돼 순국했다. 이후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건너간 허씨의 할머니와 자식들은 줄곧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았다.

허씨는 두 딸을 모두 한국으로 시집 보낸 뒤 2000년에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죽을 때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죽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허씨는 "나이가 드니 '뿌리'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다"며 "마침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한국 국적을 수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와서 국적 취득 신청까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허씨가 허주경 선생의 손자임을 인정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는 꼬박 12년이 걸렸다. 허씨가 7세 때 지금 이름으로 개명(改名)하는 바람에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허주경 선생의 손자 이름인 허재렬과 다르다는 이유로 손자임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허씨는 4차례 중국을 오가며 자신이 개명했다는 공식 기록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결국 작년 8월 어릴 적 살던 마을의 파출소에서 아버지 이름과 원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서류를 발견한 허씨는 같은 마을 사람 3명의 증언까지 모은 뒤 면사무소에 가서 개명 확인 서류를 발급받았다. 이 서류를 다시 창춘(長春)시 공증처에 가서 공증받고 나서 보훈처에 제출했다.

"이제 곧 주민등록증을 받을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오. 이제는 한국 국민이 됐으니 어려운 이웃도 돕고, 시청에 가서 봉사도 하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