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출신 로살리씨가 어릴 때부터 쓰던 기도서. 큰 아이가 아팠을 때 사진을 끼워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18년 전 한국에 올 때 미얀마에서 가져온 전통 가방을 꺼내 보며 많이 울었어요. 그러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위로가 됐습니다."

미얀마 출신 김하나(36)씨는 8일 국립민속박물관이 개최하는 '다문화 특별전―내 이름은 마포포 그리고 김하나'의 주인공이자, 전시회를 기획하고 준비한 객원 큐레이터다. 베트남과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국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이 내놓은 자료 538점 가운데는 김씨가 다섯 살 때부터 쓴 천가방도 포함돼 있다. "10남매 중 여섯째인데요,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 부모님이 사주신 거라서 더 애착이 가요. 1994년 한국에 올 때도 이 가방 안에 여권과 할아버지 이(齒)를 넣어 왔습니다." 김씨의 미얀마 이름은 마포포. 포포는 '내 사랑'이란 뜻으로 손녀를 귀여워한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김씨는 열일곱이던 1993년, 자동차 수입 사업을 하기 위해 미얀마를 찾았던 남편과 결혼했다. 열일곱 살 차이였다. 이듬해 한국에 들어와 시부모님이 살던 울산에서 12년간 살았다. "당시만 해도 동남아 출신 며느리가 거의 없을 때라서, 친구도 없어서 힘들었어요."

◇'마포포'의 한국 생활

김씨는 열네 살, 열두 살 아들을 뒀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학부모회에도 열심히 다녔다. "아이 성적이 좀 떨어졌는데, 외국인 엄마라서 그렇다고 뒤에서 수군댈 때 가슴이 아팠어요." 아이마저 학교에 온 엄마를 못 본 체할 때는 가슴이 무너져내렸다고 한다. 김씨는 2006년 남편과 이혼하고, 3년간 경기도 안산의 이주민통역지원센터에서 통역과 상담을 하면서 결혼 이주민 여성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베트남 출신 아내가 몸이 안 좋다면서 그 나라 정부에 '와이프를 바꿔달라'고 요청해달라는 남편도 있더라고요.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도 아닌데…."

김하나씨는“고향에서 가져온 옷과 가방, 신발을 시댁에서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없애버렸을 때 속상했다”고 말했다.

다문화 특별전은 결혼 이주 여성들의 고향에 대한 추억과 혼례, 한국 생활의 갈등과 극복 과정을 담은 자료들로 꾸민다. 김씨는 이주 여성의 시각으로 전시 기획과 원고 작성, 자료 수집은 물론 전시회 포스터 모델로도 직접 나섰다. 한복과 미얀마 전통 의상을 각각 입은 그의 상반신이 포스터를 장식한다. "내 이야기를 직접 하려고 하니 정말 쉽지 않네요. 나 같은 이주 여성들의 삶을 한국 사회가 좀 더 이해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나섰어요."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은 "민속박물관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현장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주 여성의 삶이 이제 대한민국 보통 사람 삶의 '영역'에 포함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집올 때 아빠·엄마 이 가져와

태국 출신 룽파(38)씨는 부모님 치아를 전시회에 내놓았다. 12년 전 한국에 올 때 부모님 사진이 없어 대신 들고 왔는데, 고향 생각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고 했다. 필리핀 출신 로살리(35)씨는 2002년 한국에 시집올 때, 처음 발급받은 필리핀 여권과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가톨릭 기도서'를 내놓았다. 카드 모양의 이 기도서는 로살리씨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해온 것으로, 첫 아이가 많이 아팠을 때 아이 사진을 끼워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7년 전 입국한 필리핀 출신 자네트(37)씨는 입국 당시 들고 온 가방을 출품했다. 여권이나 손지갑 정도 들어갈 만한 자그마한 손가방이다. 이건욱 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필리핀에서는 '한국에 가면 필요한 게 다 있으니 못사는 나라에서 짐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주 여성의 물건 중엔 커다란 '이민 가방' 같은 건 없다"고 했다.

김하나씨는 '다문화 특별전'이 열리는 동안 관객들에게 전시회와 이주 여성들의 삶을 소개하는 일을 맡는다. 김씨는 "'다문화'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외국 출신이라고 특별 대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상처만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전시는 10월1일까지. 문의 (02)3704-3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