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여름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열렸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 대회 이후, 중국 피아니스트 장하오천(22·사진)은 국내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쓰라린 기억을 상기시키는 이름이 됐다.

당시 19세의 장하오천은 결선에서 흡사 모범생을 연상시키는 뿔테 안경과 단정한 연미복 차림으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공교롭게 그 곡은 한국의 참가자였던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같았다. 손열음은 최고 실내악 연주상과 은메달을 수상하며 분전했지만, 심사위원단은 장하오천을 금메달 수상자로 뽑았다. 대회 최연소 우승자이자 중국 첫 대회 우승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5일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과 아시아, 유럽에서 매년 60~70회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니 콩쿠르가 커다란 기회와 변화가 된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음 달 그가 국내 무대에 첫선을 보인다. 중국 차이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리신차오)의 내한 공연에 협연자로 초청받아서 피아노 협주곡 '황하'를 연주하는 것이다. 중국 전통 민요의 선율을 담은 이 협주곡은 당초 중일전쟁 당시인 1939년 칸타타로 작곡되었다가, 문화혁명 와중인 1969년 피아노 협주곡으로 개작됐다. 장하오천은 "어릴 적부터 듣고 자라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읊조릴 수 있는 선율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장하오천은 12세 때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5세 때 미국 커티스 음대로 유학을 떠난 '영재 출신'의 연주자다. 일본어 통역가인 아버지와 컴퓨터 엔지니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개혁·개방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세대에 속한다.

커티스 음대에서는 랑랑(30)과 유자왕(25) 등 중국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두루 길러낸 게리 그래프만을 사사했다. 이 때문에 그는 '중국 피아노 사단의 막내'로도 불린다. 장하오천은 "2005년 내가 입학했을 때 랑랑은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고 있었지만, 유자왕과는 4년간 학교를 함께 다니면서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기억했다.

최근 세계 무대에서는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연주자들의 돌풍이 거세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수준 높은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근면하고 집중력이 높아서 서양 음악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아시아의 피아노 음악이 아직 독일이나 러시아처럼 뚜렷한 전통을 형성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여전히 발전하고 진화하는 중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차이나 내셔널 심포니 내한 공연(협연 장하오천), 8월 2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6303-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