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 이후 원자력발전소 22기(올해 기준)를 상업 가동 중인 세계 5위(발전량 및 원전 보유 기준)의 원자력 국가다. 전력 생산의 35%를 원전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을 하지 못해 외국에서 농축된 우라늄을 들여오고 있다. 2014년 새 한미 원자력협정 발효 이후에도 우라늄 농축 권리를 얻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여러 가지 벽에 부닥치게 된다.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 필요"

우리나라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원전 가동에 필요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없기 때문에 우라늄 정광(精鑛·옐로 케이크)을 연간 4000t 사들여 다시 다른 나라에 농축을 위탁하고 있다. 원전을 안정적으로 가동하려면 우라늄 정광과 함께 이를 농축해 주는 해외 업체를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 우라늄 정광을 수출하는 나라는 20여개국에 이르지만, 우라늄 농축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영국·중국·일본·프랑스 등으로 한정돼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에 농축을 위탁하고 있다. 현재 이 나라들과 3~5년 정도 농축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비중을 생각하면 일부 국가 업체와 3~5년 계약을 맺는 것은 자원 확보를 100% 자신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며 "우리가 농축 기술을 확보해 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것이 근원적으로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농축 기술을 확보한 국가가 국제 관계에서 이를 무기화할 경우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농축 기술 부재는 에너지 종속"

원자력 전문가들은 "우라늄 농축은 이론적으로는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우라늄의 질량수가 다른 점을 이용한 원심분리법, 기체확산법(열확산법)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포스텍 김무환 교수(기계공학과)는 "이를 공학적으로 설비화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며 "우라늄 농축 기술이 없는 것은 에너지 기술 및 공정에 대한 종속을 의미한다"고 했다. 기체확산법은 연간 농축우라늄 1만7000t을 생산하려면 100만㎾발전소 6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원심분리법은 기체확산법에 비해 소요 전력이 7분의 1 정도 필요하지만, 원심분리기 1대당 처리량이 적고 저농축우라늄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 선진국들은 레이저법 등 농축 신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서둘러 농축 기술과 공정 역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앞으로 경쟁력 있는 우라늄 농축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50년 뒤 내다봐야"

우리나라가 연간 수입하는 우라늄 정광은 3000억원이며, 이를 해외 업체에 위탁 농축하는 데 약 6000억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원자력 전문가는 "위탁 농축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농축시설을 짓고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데 더 많은 돈이 들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위탁 방식이 더 경제적"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경희대 박광헌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원자력 기술은 5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며 "당장 위탁 농축이 경제적이라고 해도 장기적인 자원 안보 차원에선 농축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원전을 수입하려는 나라들은 발전 기술과 함께 농축우라늄의 안정적인 공급도 중요하게 여긴다"며 "우리가 농축 역량이 없을 경우 프랑스 등 원전 수출 경쟁국에서 이를 트집 잡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