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필요에 따라 동남아 국가 여성들과의 국제결혼 문호는 열어놓고, 정작 이주여성들이 정착해 살아가도록 돕는 제도나 정책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재홍(59·사진) 전남 나주시 행정지원과장은 "많은 이주여성들이 우리 농촌에 들어와 있으나, 국적취득 절차의 제한규정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결혼이주여성의 안정적 생활을 가로막고 있는 국적취득 절차의 문제점을 주제로 쓴 박사학위 논문을 동료 직원과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박사학위는 지난해 받았지만 공무원 신분으로 조심스러워 밖으로 알리지 않았다.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조만간 공로연수에 들어갈 예정인 그는 이제야 맘 편하게 박사논문을 주변에 알리게 됐다고 했다.

7급 공무원 시절부터 4년여간 사회복지업무를 했던 그는 2008년 사회복지과장을 맡으면서 이주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지원센터에서 이주여성들을 만났는데, 외출복이라고 할 수도 없는 허술한 차림이 대부분이었어요. 지원업무를 맡은 공무원으로서 그들의 고달픈 삶이 안타까웠습니다."

이주여성들은 자국에서의 가난을 벗어나 인생역전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지만, 남편들 역시 사회적·경제적 약자에 속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주여성들이 자생력을 갖고 꿈을 이루려면 취업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 국적취득이 선결문제였죠. 당시 통계자료를 보니, 전체 이주여성 가운데 국적을 가진 여성은 30.7%에 불과했어요."

그는 "당시 나주지역에 440여명의 이주여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을 붙들고 왜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나주 동신대에서 강의를 해왔던 그는 이 기회에 이주여성들의 국적취득 문제를 주제로 미뤄왔던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로 맘 먹었다.

이 때부터 그는 매일같이 퇴근 후면 논문 준비에 매달렸다. 토·일요일엔 이주여성들을 상대로 면접 설문조사를 벌였다. 1년 6개월 동안 그의 면접 리스트에는 14개국 이주여성 254명의 이름이 올랐다.

그는 논문에서, 이주여성들의 국적취득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3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국내법은 18세 이상으로 되어 있는 결혼연령을 이주여성들에게는 20세로 적용하는 조항. 이른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을 위해 결혼연령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둘째는, 입국한 지 2년 이상으로 규정한 귀화신청 기한. 그는 "자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입국한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몇 개월 후 아기 엄마가 된다"며 "과거 위장결혼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귀화신청 기한을 1년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와 함께 국적취득 신청 때 남편과 동행해야 하는 조항과 3000만원 이상 예금통장·부동산 증명이나 취업증명을 요구하는 조항도 큰 장애물로 지적했다.

그는 "상당수 남편은 이혼요구 등을 우려해 이주여성들의 국적취득에 소극적이고, 재산 등 경제문제를 국적취득에 결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이주여성들이 국적취득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거나, 신청절차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주여성들의 조기 국적취득을 돕기 위해서는 자치단체가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 '국적취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법무·외교·행안·여성가족·보건복지 등 5개 부처로 나뉘어 있는 관련 업무도 하루빨리 일원화해야 합니다."

그는 "퇴직 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삶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