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최근 서울 강남의 '어제오늘내일'이라는 룸살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국내 최대 업소라는 이 룸살롱은 화장실 갔던 여종업원이 길을 잃을 정도로 규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검찰은 '룸살롱 황제'로 알려진 이경백씨를 조사하는 등 룸살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로 룸살롱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40여년 전 처음 생긴 룸살롱은 2000년대 초반 최대 호황기를 거쳐 지금은 미래가 어두운 사업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사진은 영화‘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으로 기사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1970년대 초반에 등장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흥업계 최고 업종은 '요정'이었다. 삼청각 대원각 청운각 오진암 옥류정 등의 유명 요정에 정·관·재계 거물들이 모여 '국사(國事)'를 논의했다고 해서 '요정정치'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국내에 룸살롱이 생긴 건 1970년대 초반이라고 한다. 서울 광화문 '이명싸롱'과 후암동 '민의집' 등이 1세대 룸살롱으로 전해지며, 이후 중구 퇴계로와 충무로 일대에 '하마' 등 몇개 업소가 몰려 있었다고 한다. 요정에는 온돌방과 한복 입고 가야금 타고 전통춤 추는 여종업원이 있었다면 룸살롱에는 소파와 양장 입은 여종업원과 1인 악사(밴드)가 나오는 곳이었다. 적은 자본과 인원으로 창업이 가능하기에 룸살롱은 요정에 비해 업종 경쟁력이 뛰어났다.

룸살롱은 1980년 전후 강남 개발과 함께 그 세를 급격히 불렸다. 강남대로 좌우의 서초동과 신사동, 역삼동 일대에 룸살롱이 생겼고, 이후 테헤란로를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룸살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최대 룸살롱 밀집지는 테헤란로 동쪽의 선릉역 일대다.

이 무렵 룸살롱을 각인시킨 큰 사건이 벌어진다. 1986년 8월 14일 밤 10시 30분 역삼동 서진룸살롱에서 폭력조직 맘보파(원섭이파) 일행 7명과 서울목포파(진석이파)가 술을 마시다 난투극을 벌여 맘보파 4명이 끔찍하게 살해됐는데, 이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전 국민이 룸살롱의 존재를 알게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시·군 단위까지 룸살롱이 퍼졌고 이후 요정을 밀어내고 유흥업계 정점을 차지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중과세 정책으로 확장이 주춤했던 룸살롱은 1997년 IMF 사태로 위기를 맞는 듯했으나 벤처 붐과 함께 2000년대 초반 최대 호황기를 맞는다. 한 달에 1000곳이 개업할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상류층만 이용했으나 90년대 들어 어지간한 샐러리맨이면 한 번 정도는 가봤을 정도로 룸살롱이 대중화됐다.

최고급 룸살롱으로 알려졌던 서울 서초동의 지안.

◇술 1병에 1000만원 넘는 곳도

룸살롱 내에도 차별화 작업이 이뤄졌다. '텐프로'와 '점오'로 불리는 업소인데 원래 여종업원이 받은 팁에서 마담이 떼어가는 수수료가 10%인 업소가 텐프로이고 15%인 업소를 점오라 했는데, 요즘은 미모 기준으로 상위 10% 혹은 15%에 드는 여종업원이 일하는 업소로 통한다.

과거 일반 룸살롱에서 마담 수수료는 20%를 넘었으나 요즘은 텐프로뿐 아니라 일반 업소도 그 수수료가 10%로 낮아졌다고 한다. 마담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여종업원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는 풍조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텐프로의 경우 한때 강남에만 20여개 업소가 영업을 했으나 지금은 7~8곳으로 줄어들었다. 이들 업소의 술값은 손님 3명이 양주 2병을 마시면 보통 300만원이 넘는다. 17년산 국산 양주 1병에 80여만원, 조니워커블루 180만원, 발렌타인 30년은 250만원 안팎, 루이 13세는 병당 1200만원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여종업원은 동시간대에 여러 테이블을 서빙하기 때문에 한 룸에 머무는 기간은 시간당 10분에 불과하다. 여종업원 팁은 10만원으로, 하룻밤에 룸 10개 이상을 들어간다고 보면 보통 100만원을 챙기게 된다.

역대 최고 룸살롱은 2008년 문을 닫은 서초동 '지안'으로 알려져 있다. 1985년 개업한 지안은 5공화국 때는 군부 실세와 재계 인사들이 주 고객이었고,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의 아들들과 권력 실세들이 즐겨 찾았다고 해서 '황태자 클럽' 혹은 '일프로'라는 별칭이 붙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청와대 만찬 후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와 정대철 민주당 대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등이 2차 술자리를 가진 곳도 지안이었다.

◇미래 어두운 사양산업?

소수 룸살롱이 고가(高價) 전략을 구사한 것과 달리 일부 업소는 가격파괴 전략을 택했다. 2000년대 초반 이른바 '풀살롱'의 등장으로 업계는 무한경쟁 체제로 접어든다. 이 싸움을 주도한 사람이 탈세 혐의로 구속됐던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다. 한 건물에서 술과 성매매를 모두 소화하는 '풀살롱'은 불법행위의 온상으로 자리 잡았다. 룸 안에서 유사 성행위나 직접 성매매까지 하는데도 술값은 다른 룸살롱의 절반으로 내렸다. 룸살롱 술값과 서비스 '농도'는 반비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 텐프로 등 최고급 룸살롱에선 접대부가 성매매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룸에서의 신체접촉 수준도 상당히 제한적인 반면, 저가 룸살롱에선 온갖 퇴폐 행위가 이뤄졌던 것이다.

수사를 받고 있는 '어제오늘내일'의 실제 운영자로 알려진 김모씨는 이경백씨와 함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혀왔다. 이씨가 저가(低價) 룸살롱 시장을 평정했다면 김씨는 중가(中價) 룸살롱의 최강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룸살롱은 미래가 어두운 사양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룸살롱을 폐업한 정모씨는 "접대문화가 서양처럼 건전해지고 있고 가족 문화가 확산하면서 룸살롱 찾는 사람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오피스텔 안마방·키스방 등 신종 업체가 늘어나는 것도 룸살롱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텐프로 등 최고급 업소가 문을 닫거나 낮은 등급 업소로 재개업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비싼 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룸살롱 여종업원은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저학력 지방 출신이 많았고 일부 강요와 협박에 의해 접대부 생활을 했으나, 요즘은 학력도 다양해졌고 자발적으로 룸살롱을 찾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최고급 업소를 중심으로 월 1500만~3000만원을 버는 여종업원들이 있지만 '돈 모았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업소 관계자들은 말한다. 쉽게 번 만큼 쉽게 쓴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