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미국의 모든 문서와 성명에 일본어 '위안부(comfort women)'를 그대로 번역한 말을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미국의 넬슨 리포트가 9일 보도했다. 넬슨리포트는 워싱턴 DC의 정가에서 주로 읽히는 온라인 뉴스 매체다.

클린턴 장관은 최근 국무부 고위 관리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 '일본군 위안부' 대신에 '강제적인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본지 9일자 A1면〉 이에 대해 일본은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무상이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

클린턴이 가장 강경

넬슨 리포트는 "클린턴 장관의 이 발언은 일본에 충격을 주고 있으며 미국이 한국은 물론 (성노예 피해를 입은) 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호주·뉴질랜드·네덜란드의 편을 들어서 공식적으로 일본과 맞선다는 것으로 읽히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 패트릭 벤트렐 부대변인도 9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여성들(일본군 성노예)에게 일어난 일은 비참했다"며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심각한 인권위반'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의 이 표현은 최근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 연방하원은 2007년 일본군 성노예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성노예 활동(sex slavery)'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일본의 책임을 명시했다. 당시 톰 란토스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은 "일본 정부가 아시아와 태평양의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美 국무·日 외상 대립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이 지난 8일 도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양국은 클린턴 장관이 언급한 ‘일본군 성노예’ 표현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일본의 미국 내 성노예 추모비 철거 움직임이 역효과 불러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클린턴 장관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미국 내에 세운 '성노예 추모비'에 대해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철거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라며 "그가 최근 공식 문서에 위안부가 아닌 '성노예'로 표기할 것을 지시한 데는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다"고 했다.

◇일본 외무상이 직접 나서서 반박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10일 국회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이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라고 표현했다는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미 국무장관이 성적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지금까지의 총리의 사죄 표명, 위안부 지원을 위한 아시아여성기금 창설 등의 조치를 설명하고, 이는 틀린 표현이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2007년 미 하원 결의안에 이어 미국 공문서에 '성노예' 표현이 등장할 경우, 이 표현이 공식 표기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은 물론 다른 모든 나라에 성노예 표현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는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종군위안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데다 우리가 직접 미국에 '성노예' 표현을 써 달라고 요구하기 난처한 입장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