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직원 최경훈(가명·28)씨는 지난 3월 대출을 받아 결혼할 여자친구에게 600만원짜리 샤넬 가방을 사줬다.

최씨 아버지는 대기업 다니다 퇴직해 지방 중소기업에 재취업한 상황이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일주일에 나흘은 지방 사택에서 지내며 자취생처럼 산다. 재산은 대출 3억원 끼고 산 아파트(165㎡) 한 채뿐이다.

"여자친구가 샤넬 가방을 원하기에 어머니와 상의해서 아버지에겐 비밀로 하고 무리해서 사줬어요. 아버지가 뒤늦게 알고 '지금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걔(며느리)는 그걸 받겠대?' 하고 노발대발하셨어요. 이미 줬는데 도로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저도 집안 형편상 무리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부모 세대는 "노후자금 털어 자식 결혼시킨다"고 고민하지만, 자녀 세대는 부모가 얼마나 절박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올해 5월 30일~6월 1일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신혼부부 300명을 조사한 결과, "나를 결혼시키느라 부모님이 힘들어하셨다"는 응답은 세 명 중 한 명꼴(33%)이었다.

취재팀이 만난 신랑·신부들도 대다수가 "부모가 자식 교육시키는 게 당연한 것처럼, 결혼시키는 것도 부모의 도리 아니겠느냐" "미안하긴 하지만 요새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회사원 한명훈(가명·27)씨는 작년 12월 1억7000만원짜리 수도권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이 가운데 한씨가 모은 돈은 4000만원뿐이고, 나머지는 양가 부모가 나눠서 부담했다. 한씨는 "부모님에게 기대서 미안하긴 했지만, 대출받아서 집을 얻으면 결혼한 뒤 내가 갚아야 하는데,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면서 "부모님 덕분에 빚 없이 출발했으니, 이제부터 버는 돈은 다 우리 돈"이라고 했다.

자녀 세대는 '부모의 경제력=나의 경제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원생 김민호(가명·31)씨는 "부모님에게 결혼비용을 100% 의지했지만, 학교 다니면서 결혼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취재팀이 들여다본 김씨의 '결혼 지출 내역'은 어쩔 수 없이 기대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셋값 2억5000만원, 호텔 결혼식 비용 5000만원, 예물 3000만원, 국산 대형 세단 3500만원…. 총 4억원이 들었는데도 김씨는 "우리 부부 수준으로 보면 과하지만, 우리 부모님 경제사정으로 보면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결혼은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독립'의 기회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정반대"라면서 "부모 세대는 물론 자식 세대도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느냐'가 자신을 빛나게 한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다 큰 자식이 부모 돈으로 신혼집 마련하고 패물 사는 걸 부끄럽게 여기긴커녕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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