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물·예단에는 이상한 이중 잣대가 있다. 조선일보여성가족부가 전국 신혼부부 300명을 조사해보니, 세 명 중 한 명이 "예물·예단에 쓰는 돈이 가장 아깝다"고 했다(35.3%). 그러면서도 취재팀이 만난 신랑·신부·혼주들 대다수는 "원래 마음먹은 것보다 예물·예단 하는데 돈을 더 썼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신랑·신부·혼주들이 타는 '비용 에스컬레이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시어머니는 욕심 내고

지난해 2월 결혼한 박일수(가명·30·대기업 직원)씨는 평소 자신의 어머니가 소탈하고 남의 눈치 안 보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식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아들 가진 엄마가 일생에 세 번 자식 자랑할 게 있는데 ①대학 잘 보냈을 때, ②취직 잘 했을 때, ③장가 잘 보냈을 때"라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하는 '장가 잘 보냈다'의 기준이 '예단으로 뭘 받았느냐'였다.

박씨 어머니는 "친구들 만날 때 '며느리가 사줬다'고 자랑해야 한다"며 예비 며느리에게 명품 가방과 옷을 사달라고 했다.

며느리는 겁 내고

공기업 직원 김혜진(가명·31)씨는 직장생활 7년간 모은 돈 3000만원을 결혼하면서 다 썼다. 김씨는 예비신부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수시로 들어가 남들은 예단·예물을 어느 정도 하는지 세세하게 살폈다. 하지만 실제 지출이 예상보다 훌쩍 커졌다.

"예를 들어 시댁에 떡을 보내려 해도, 저는 좀 더 저렴한 곳에 주문하고 싶은데 시어머니는 (서울 강남의) 청담동 유명 떡집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그걸 무시할 수도 없으니 직접 가보게 되고, 가보면 비싼 게 좋기는 좋고…. 시댁에 보낼 물건인데 최고급은 못 보내도, 제가 보낼 수 있는 최상급을 보내야 마음이 편하잖아요. 결국 그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쓰게 되더라고요."

엄마 친구는 부추긴다

많은 신랑·신부가 "결혼할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엄마 친구'"라고 했다. 정유회사 직원 이석우(가명·29)씨는 양가 어머니 친구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처음에는 예물·예단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양가 어머니 친구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성화였다. 신랑 어머니 친구들은 "누구네는 예단으로 뭐 받았는데 당신은 뭐 받았느냐"고 물었다. 신부 어머니 친구들은 "지금 당장은 부담스러워도 남들 하는 건 대충 다 해줘야 딸이 마음고생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신랑신부 입장에선 차라리 그 돈 있으면 집 얻는 데 보태고 싶다"면서 "처음엔 간소하게 하자고 해도, 갈수록 주위 사람들 등쌀에 '할 거 해주고 받을 거 받자'는 쪽으로 양가 어머니 마음이 변해가서 답답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