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 영산대 일어학과 교수

중국인 교수가 흑판에 '需要(수요)'라고 적었다.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그 단어의 뜻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한다. 필자는 벌써 그 단어를 이해하고서 교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여유를 가진다. 중국어 발음을 들었을 때는 젊은 대학생이나 필자나 단어의 이해도에서 똑같은 상황이었으나, 흑판의 단어를 보는 순간 벌써 차이가 난다.

중국 어느 대학의 중국어 수업 현장의 한 장면이다. 필자는 일본어학이 전공이지만 중국에도 관심이 많아 안식년을 맞아 중국에 교환교수로 와 있다. 필자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 교육을 받은 소위 '한자 세대'와 그렇지 않은 '한글 세대' 간에는 단어의 이해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글세대는 안타깝게도 '한맹(漢盲)'이나 다름없다.

중국어나 일본어 공부가 필요한 사람만 한자를 배우면 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찬물'은 우리 고유어지만, '냉수(冷水)'는 한자어다. 한자어는 뜻글자인 한자로 표기해야 그 의미 파악이 빠르다. '초목(草木)'은 '풀과 나무'다. 이를 영어 단어 외우듯이 소리글자로만 체득하면 당연히 학습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받고 싶은 사람만 받으면 되는 것 이상으로 한자 교육은 중요하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0년 11월 그동안 써오던 '상용한자(常用漢字)'를 1945자에 다시 191자를 추가해 2136자로 확대 개정해 한자 교육을 강화했다. 중국은 1964년부터 한자의 약자화 정책에 따라 '간체자(簡體字)'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1986년 최종적으로 2253자의 간체자가 통용되고 있다. 중국 역시 정부 주도로 나름대로 편리하게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글전용정책에 의해 지금은 국어 시간에 한자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72년에 제정된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는 한문 시간에 가르치고 있지만 이것마저 학교의 선택에 따라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한자어는 고유어, 외래어와 함께 우리말이다. 한자를 모르면 단어의 의미파악이 잘 안 될 뿐만 아니라 문장 이해도에서도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풍요롭고 윤택한 우리의 언어생활을 기대할 수 없다.

한자 교육에 대한 정책 점검과 함께 한자 교육 강화의 필요성을 중국에 와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 중국어 수업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