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8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선전한 박정숙씨가 실은 지난 4월 박씨 아들을 인질로 잡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국정원 격)의 협박전화를 받고 고뇌 끝에 북한행을 택한 것으로 29일 밝혀졌다.

박씨와 그의 한국 내 친척들과 친분이 있는 '탈북 여성 1호 박사' 이애란(48)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은 이날 "박씨가 한국에서 쓰던 이름은 박인숙"이라며 "박씨는 지난 4월 북한에서 걸려온 협박전화를 받고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통일부 박수진 부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재입북한 인물은 2006년 입국해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던 박인숙씨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4월 북한에 있는 사돈이 걸어온 국제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돈은 박씨의 아들 A씨가 탄광으로 끌려간 뒤 보위부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전하며 "보위부에서 A서방을 죽이겠다고 한다. 살리고 싶으면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보위부가 사돈의 입을 빌려 박씨를 협박했다는 것이다.

2006년 3월 탈북 후 남한에서 생활하다 최근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 박인숙(북한이름 박정숙)씨가 2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씨는 북측이 “(북에 있는)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해 북한행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박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 아들을 탈북시키려 애써 왔는데 일이 잘못된 것 같다"며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한참을 고민하던 박씨가 5월 중순 중국으로 떠난 뒤로 연락이 끊겼는데 북한 당국이 어제 박씨를 기자회견장에 등장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함경북도 청진에 살던 박씨는 6·25 전쟁 때 헤어진 부친을 찾기 위해 2006년 3월 29일 탈북했다. 통신은 박씨가 중국에서 우리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유인전술'에 걸려 그해 6월 29일 남한에 갔으며, 6년간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지난 5월 25일 북한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서 박씨는 한국 생활을 묻는 조선신보(일본 조총련 기관지) 기자의 질문에 "인간의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 사람들을 정신·문화적으로 타락시키는 썩고 병든 사회가 바로 남조선"이라며 "탈북자들에게 돌아가는 일자리란 오물 청소, 그릇 닦기, 시중들기 등 가장 비천하고 어려울 일뿐이고, 여성들은 유흥업소에 매매되거나 음란한 화상 촬영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자회견장에 함께 참석한 아들 부부와 함께 '못 잊을 나의 길'이란 노래를 부른 뒤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향해 절을 했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북한 주민이 가진 남한에 대한 환상과 기대감을 꺾어놓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