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임기가 시작된 19대 국회가 3주가 넘도록 아무런 일도 못하고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지난 5일 본회의를 열어 의장단을 선출하고 위원회 활동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민주당은 방송사 파업 국정조사, 상임위원장 배분문제를 놓고 여전히 싸움만 하고 있다. 1988년 13대 국회부터 시작된 '늦장 개원'의 악습이 24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임위원장, 국정조사가 핵심

여야는 지루한 꼬리 물기식 역(逆)제안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당초 여야 의석 수가 엇비슷하다는 이유로 18개 위원장 가운데 9자리를 요구하다가 8자리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관례적으로 여당 몫인 문방위·정무위·국토위 가운데 한 곳의 위원장을 요구했다. 이 세 곳은 각종 현안이 몰려 있어 '3대 쟁점 상임위'로 불린다.

당초 "외통위나 국방위 중 한 곳을 내줄 수 있다"는 입장이던 새누리당은 "법사위원장을 주면 국토위원장을 양보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법사위는 법안 처리의 길목에 있는 상임위로 위원장은 전통적으로 야당 의원이 맡아 왔다.

이에 민주당은 "6개 국조·청문회에 합의하면 3개 쟁점 위원장직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제안을 들고나왔다. ▲민간인 불법 사찰 ▲정수장학회 ▲방송사 파업 ▲4대강사업 ▲맥쿼리 특혜 의혹 ▲박지만·서향희 부부 관련 저축은행 문제 등이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여당 몫이던 기재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했다.

“歲費 주지말라”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회원들이 19대 국회 첫 세비 지급일인 20일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세비 지급 반대를 주장하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대선 유·불리에 모든 것 맞춰

여야 원내 지도부가 20여일간 만난 것은 모두 10차례였다. 여야가 결정적으로 엇갈리는 것은 방송사 파업을 둘러싼 국정조사·청문회였다. 민주당은 이를 향후 대선 국면에서 야권의 승산을 높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재 언론 환경으로는 야권이 불리하다. 친야 성향의 일부 신문만으로는 대선을 치르기 어렵고 공중파 방송 중에서 우군(友軍)을 찾아야 하는데 그들의 파업사태를 그냥 두고만 볼 순 없지 않으냐"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최근 MBC 파업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총선과 대선이 겹친 1992년과 유사하다. 당시 MBC는 52일간 총파업을 벌였다.

새누리당도 강경하다. 당 고위 관계자는 "불법 파업을 하는 사람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국정조사라는 판을 깔아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MBC 사장을 교체해 MBC를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일 현재 국회에는 대법관 후보자 4명의 임명 동의안을 비롯해 216건의 법률·동의안이 제출돼 있다. 이 중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민생 법안'이라고 포장해 제출한 31개 법안도 포함돼 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대선을 의식해 국정조사를 조건으로 논의하는 것 자체가 국회 운영이 정략에 이용되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8대 국회의 경우 '한미 쇠고기 협정' 이슈 때문에 야당이 등원을 거부해 원 구성에 88일이 걸렸다. 반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야당이던 17대에선 상임위원장 배분문제로 36일이 소요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 배분은 자리다툼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 운영의 책임을 누가 지느냐의 문제"라고 했었다. 반면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여당이 힘으로 다 먹겠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반대된 주장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