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사회정책부

임의 비급여, 포괄수가제, 자동 제세동기….

요즘 정부가 발표하는 보건복지 정책에는 뜻을 알기 어려운 행정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마치 암호 같다. 18일 대법원 판결에 나오는 '임의 비급여' 제한적 허용은 전문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병원 진료비는 건강보험이 일부를 대주는 급여 부분과 환자가 모두 부담하는 비(非)급여 부분이 있다. 어떤 진료가 급여인지 비급여인지는 건강보험 급여에 관한 장관 고시(告示)로 정해져 있고, 의사는 이 범위 내에서 진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시에 없는 진료를 하고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임의 비급여다. 포괄수가제(包括酬價制)란 용어도 마찬가지다. 의사의 진료 횟수, 진료 방식과 관계없이 정부가 미리 진료비 크기를 정해놓는 제도, 즉 진료비 정찰제라고 하면 되는 것을 별도의 용어풀이를 해주지 않으면 국민이 알기 어려운 '포괄수가제'란 용어를 썼다.

직장인이나 행인의 심장마비에 대비해 다중(多衆)이 모이는 곳에 비치한 '자동 제세동기(AED·自動 除細動器)'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제세동기는 심장마비 직전에 발생하는 부정맥 중 하나인 '세동'을 제거하는 기계라는 뜻으로, '심장 충격기' 정도로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이처럼 뜻 모를 용어가 많은 것은 정부가 아직 정책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포괄수가제도 소비자인 국민 입장에서 보면 '진료비 정찰제'라는 쉬운 용어가 있는데, 정부 입장에서만 생각하니 어려운 말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온다.

포괄수가제, 임의 비급여 등은 일본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 말고도 급성상기도감염(감기), 선택의원제(만성질환관리제·당뇨병 등 만성질환자가 동네의원을 골라 질병을 관리하는 제도), 당연지정제(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제도), 국민연금 임의가입(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사람도 가입할 수 있게 한 제도) 등도 한 번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보건복지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국민이 중요한 용어를 잘 이해해야 정책이나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용어는 그런 점까지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