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노원구의 한 중학교 1학년 수업 시간. 김모(13)군이 수업 중 "속이 이상해 수업을 못 듣겠어요"라며 교실을 뛰쳐나갔다. 교사가 뒤쫓아 나오자 김군이 말했다. "전날 친구 생일파티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도저히 못 앉아있겠어요."

청소년 음주가 도를 넘고 있다. 호기심을 넘어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자고, 싸움을 벌일 뿐 아니라, 출동한 경찰을 폭행하는 사례까지 빈발(頻發)하고 있다. 심지어 청소년이 술에 취해 성폭행,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벌어진다. 문제는 도를 넘은 청소년 음주가 일부 학생들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청 통계(2006년)에 따르면 청소년이 한 해 술을 마시고 저지른 폭력 사건은 4000여 건에 달했다. 살인(3건), 강도 (59건), 강간(104건), 방화(10건) 등 강력사건도 줄을 이었다.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황의갑 교수는 "청소년 음주는 결국 이들이 자라나서 성인 음주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폭 키즈(Kids), 성인 주폭과 판박이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르는 청소년, 이른바 '주폭(酒暴) 키즈'는 성인 주폭의 행태와 빼닮았다.

지난 3월 초 새벽 2시, 경찰에 충남 천안 서북구의 한 거리에 "7명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해 보니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로 친구 생일파티에서 만취해 정신을 잃고 단체로 길거리에 누워 잠을 잤던 것이다.

소주병 들고 활보… 지난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유흥가에서 좀비 등 독특한 분장을 한 20대 남녀가 술이 든 소주병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미국에선 술병을 들고 길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체포 대상이다.

'술 객기(客氣)'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해 4월 고등학생 2명(당시 18세)은 서울 강북구의 한 여관에 방 2개를 잡은 뒤 가출한 3명의 여고생(당시 16세)을 불러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다 A양이 만취하자, 성폭행했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강릉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B(당시 18세)군은 소주방에서 동급생 C군과 함께 밤새 술을 마시다 말다툼을 했고, 이어 소주방 주방에 있던 칼로 C군을 찌르는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 조사에서 B군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고 친 뒤 경찰에 저항하는 모습도 어른들의 모습 그대로다. 지난 3월 초 오후 9시 30분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앞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던 D(18)군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고, 둔기를 휘둘렀다.

"청소년 음주,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9월 질병관리본부·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는 전국의 중·고등학생 7만5643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음주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최근 한 달 동안 술을 한 잔 이상 마셔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1만5594명으로 전체의 20.6%에 달했다. 이 중 '문제 음주'를 하고 있는 학생은 6206명(39.8%)에 달했다. 문제음주는 술 마시고 기억을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 싸움을 하는 등 문제 행동을 두 가지 이상 한 경우를 의미한다.

(사진 왼쪽)몸 못 가누는 청소년들… 홍대 인근 한 골목에서 앳돼 보이는 여성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 (사진 오른쪽)만취한 20대… 서울 신촌 일대에서 만취한 20대 남성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술집 앞에서 잠들어 있다.

취재팀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의뢰해 중·고교 교사 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7%의 교사가 '지난 1년 동안 음주 문제로 학생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전날 마신 술로 괴로워하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는 교사는 34%에 달했다.

학생들은 업소에 가 '무사히' 술을 마시기 위해 주민등록증까지 매매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선 2만~3만원이라는 시세도 정해져 있다. 인천의 고등학교 3학년 차민준(가명·18)군은 "좀 논다는 2~3학년 중에 성인 민증(주민등록증) 하나 없는 애는 찾기 힘들 정도"라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배의 민증은 '프리미엄'이 붙어 4만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주민등록증 매매 대신 '위조'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주민등록증에 씌어있는 태어난 해의 숫자를 칼로 긁은 뒤 책 등의 바코드 숫자로 바꾸는 방식이다. 서울 A고 2학년 정준희(가명·17)군은 "휴대폰 액정 필름 잘 붙이는 것처럼 학교마다 민증 잘 '만지는' 전문가가 있다"며 "이 전문가에게 5000~1만원 주고 '작업'을 의뢰한다"고 했다.

어른들, 주폭 키즈 양산한다

청소년들이 일찍 술을 접하는 현상이 만연하는 것은 너무 쉽게 술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만난 중·고생들은 '보통 술을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다 뚫리는 집이 있다"고 했다. 경기 광명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김지호(가명·18)군은 "민증 확인하지 않고 술을 파는 수퍼나, 학생인 줄 알면서도 들여보내주는 호프집 목록을 친구들끼리 공유한다"고 했다.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 조사에서도 술 구매를 시도한 청소년 중 82.5%가 제지 없이 술을 살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인제대 보건대학원 김광기 교수는 "청소년 시절에 술을 접할 경우 나중에 알코올 중독이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 당국이 청소년 음주 문제에 대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천자토론] 술에 너그러운 대한민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