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인 김재연씨가 지난 17일 서울 모처에서 같은 당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을 만난 뒤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통합진보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강기갑)와 경기동부연합 중심의 구(舊)당권파가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사퇴문제를 놓고 정면 격돌하고 있다. 이·김 당선자는 비대위의 출당(黜黨) 조치를 피하기 위해 '시도당적 이전'이라는 꼼수까지 쓰고 있다. 강 위원장과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알려진 이석기 당선자는 18일 밤 서울의 한 식당에서 3시간여 만났으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회동 후 각각 다른 문을 통해 이 식당을 떠났다.

◇이석기 출당 문제로 분당(分黨) 상황 맞아

당 비대위는 18일 경선 비례대표 당선자와 후순위 후보들에게 21일 오전 10시까지 사퇴서를 당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정미 비대위 대변인은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4명의 비례대표 당선자에게 무작정 시간을 줄 수 없다"고도 했다.

진보당 경선 비례대표 14명 가운데 10명은 이미 사퇴 의사를 밝혔다. 나머지는 4명은 당선권에 든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와 당선권 바깥의 7번 조윤숙, 15번 황선 후보 등이다. 비대위는 또 지난 12일 발생했던 중앙위원회 폭력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도 발족했다.

하지만 경기동부연합 등 구당권파는 비대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구당권파인 이상규 당선자(서울 관악을)는 이날 라디오에 출연, "이 당선자 등에 대한 출당 검토는 당이 분당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라고 했다. 구당권파는 예정대로 사무총국 당직자, 도당위원장 등 자파의 간부급 당원 500명 이상을 참여시킨 별도의 비대위를 다음 주에 출범하기로 했다.

비대위 측 관계자는 "구당권파의 계획은 지루한 지연전에 들어가 비대위 측이 지쳐서 나가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3시간 몰래 만난 이석기·강기갑… 나갈 때도 앞문·뒷문 따로따로 - 통합진보당의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과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알려진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18일 밤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회동을 마친 뒤 강 위원장(위 사진 오른쪽)은 식당 정문으로, 이 당선자(아래 사진 오른쪽)는 식당 뒷문으로 각각 빠져나가고 있다.

◇경기도당을 참호 삼아 장기전으로

이·김 당선자는 18일 출당 조치를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당적을 기존 서울시당(黨)에서 경기동부연합 세(勢)가 강한 경기도당으로 이적했다.

진보당 당규에 따르면 징계 대상자로 제소된 당원에 대해선 소속 광역시·도의 당기위(黨紀委)가 판정을 내리게 돼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경기도당은 서울시당과 달리 구당권파의 세력이 강해 제명은커녕 징계 제소조차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사퇴서 제출 시한을 21일로 못박음으로써 저에 대한 제명 절차에 사실상 돌입한 것"이라며 "당의 극단적 상황을 막기 위해 당적 이전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당을 참호로 삼아 장기전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현행 당규는 지난 13일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이전 당규에 따르면 판정을 내리는 곳은 제소하는 쪽 관할인 서울시당기위다. 현재 구당권파는 13일 중앙위 의결을 무효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유독 자신에게 유리한 '당기위 관할' 부분만 유효하다고 인정하는 꼴이다.

진보당 전국 시·도당 “강기갑 비대위 지지” 통합진보당 김종민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오른쪽 네 번째)을 비롯한 시·도당 위원장들이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중앙위 결정에 기초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적극 지지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성명에는 전국 시·도당 공동위원장 42명 중 32명이 이름을 올렸다.

현 당규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징계 절차를 담당하는 광역시·도의 당기위가 불공정한 심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중앙당기위에 관할 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중앙에서 판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절차를 둘러싼 논쟁을 벌이면서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19대 국회 개원까지 시간을 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이 된다. 진보당은 지역을 옮길 때 '당적 이전'이라고 불릴 만큼 광역시·도당의 자율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궤변으로 점철된 꼼수전략

구당권파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과 당규, 절차는 무조건 '불법'이라며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정과 절차는 철저히 따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지난 13일 중앙위 결정에 따라 구성된 '혁신비대위'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헌당규에도 없는 '당원 비대위'라는 '당(黨)내 당'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위에서 수적 우위로 패권을 유지해 오다 세가 밀리자 초법적 기구까지 만든 것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우리가 언제 다수결을 했느냐"고 했다.

비례대표 사퇴 결정에 대해서도 경기동부의 실세인 이석기 당선자는 "당원 총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3월 경기동부연합에 대해 "모른다. 실체가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구당권파 누구도 그 존재를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