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고 있는 엄선경(31·연구원)씨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영국인 친구 존 데븐포트(Davenport·27)씨 커플과 밥을 먹다 무안해졌다. 엄씨는 올가을 결혼하는 예비신부, 데븐포트씨 커플은 내년에 결혼하는 예비부부다. 예비신부 엄씨가 "한국에선 신랑 부모가 집을 마련해주고, 신부 부모가 명품 가방과 현금 등을 예단으로 보낸다"고 했다. 데븐포트씨가 깜짝 놀랐다. "한국 부모들은 모두 부자니?"

드레스 하루 빌리는 데 수백만원이 든다는 얘기에, 데븐포트씨 여자친구는 "나는 업체가 빌려주는 드레스 대신 어머니가 30년 전에 입은 웨딩드레스를 물려받는다"고 했다.

엄씨는 "영국 친구들 반응을 보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긴 많은 것을 새삼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엄씨는 유학 와서 만난 이귀한(29·의사)씨와 올가을 한국에 돌아와 작은 결혼식을 올리겠다며 '100쌍 캠페인'에 신청했다.

엄씨는 "유학 가기 전까지 친지들 결혼식에 여러 번 갔지만 어느 결혼식이나 비슷비슷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재미가 없었어요. '결혼식은 원래 하객에겐 참 지루한가 보다' 했죠. 예단·예물을 둘러싸고 양가가 갈등을 빚는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지만, 그때도 역시 '원래 그런가 보다' 했고요. 영국에 와보니 달랐어요."

한국에선 꽃이건 드레스건 업체가 옵션을 내놓고, 비용은 부모님이 대주는 구조다. 영국은 세세한 부분까지 신랑·신부가 일일이 스스로 결정하는 걸 재미로 안다. 엄씨는 "예단을 주고받는 대신 시어머니 드레스처럼 추억과 의미가 깃든 선물을 나누더라"고 했다.

예비신랑 이귀한(왼쪽)씨와 예비신부 엄선경씨가 2010년 영국 동부 해안을 여행하던 중 놀위치(Norwich)에서 찍은 사진. 올가을 결혼하는 이씨와 엄씨는 “우리 스스로 준비하는 결혼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비싸긴 런던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지지만, 해법은 반대였다. 한국에선 '부모가 안 대주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국에선 젊은 부부가 모기지(장기 주택담보대출)를 얻어 스스로 갚아나간다.

3년 전 영국 친구가 템스강 상류 시골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정말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낮 12시부터 자정까지 파티를 했다. 그 부부 역시 신접살림 차릴 집은 모기지로 얻었다.

두 사람은 영국 친구들처럼 결혼식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우선 양가 부모에게 말씀드려 예물·예단을 생략하고, 두 사람도 간소한 결혼반지만 하나씩 나눠 끼기로 했다. 동네 웨딩숍이 폐업 세일할 때, 샘플로 전시하던 드레스를 싼값에 샀다. 베일은 바느질이 취미인 예비신부가 손수 만들고 있다. 둘이 함께 적금을 부어서 모기지 보증금을 마련했다. 결혼식 끝나면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창비)를 배낭에 넣고 제주도·전라도를 여행할 계획이다. 예비신부 엄씨는 "외국에 살고 있는 저희에겐 맛있는 한식을 실컷 먹는 게 최고의 럭셔리"라고 했다.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화려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라고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결혼식은 우리 둘이 왕자와 공주가 되는 날이 아니라, 부모님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기로 약속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욕심이 사라졌어요. 영국에 온 뒤 유명 호텔로 수백명 불러 식 올리는 친구를 딱 한 명 봤는데 파키스탄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식 끝나고 '돈이 너무 아깝다'고 하길래 '우리랑 참 비슷하다' 싶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