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 위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크게 금융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와 비금융 부문의 불균형이 금융 부문으로 전이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비금융 부문에서 금융 위기를 촉발하는 경로 가운데 하나는 재정 불균형이다. 재정 문제가 금융 위기로 이어진 사례는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와 최근 유럽이 대표적이고 1998년 러시아, 1999년 에콰도르, 2001년 아르헨티나터키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번에 유럽에서 자국의 경제 현실보다 높이 평가되는 유로화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국가가 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정부 부채가 과도하게 발생한 것은 필연이었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 신용으로 규제 없이 달러화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면 어떤 상태가 될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금융 위기를 경험했는데, 이 위기가 재정 문제와 연관된 것인지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흔히 외환 위기라고 부르는 당시 위기는 재정보다는 금융 부실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금융 위기가 재정에 기인했는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한 것은 원인에 따라 해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정과 관련이 적은 위기는 금융 부문에 구제금융을 투입하거나 경기 침체에 정부 지출을 늘려 대응하면 신속히 해결된다. 우리나라가 1997년 위기에서 빨리 회복될 수 있었던 것도 공기업을 포함한 정부 재정이 비교적 건전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재정 불균형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는 만성적인 경기 침체를 낳는데, 피해를 줄이려고 정부 지출을 늘리면 국가 재정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오히려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경기 침체를 가속한다.

최근 프랑스 대선과 그리스 총선 이후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로화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던 유로존 국가들이 과도하게 국가 부채를 확대하면서 초래된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으로 긴축 이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부 지출을 늘리겠다고 선언했으니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유로화 몰락 이외의 대응 방안은 없는가?

유로화 체제를 유지하면서 일단 상황 악화를 막는 방법으로는 구제금융이 있다. 직접 위기 국가에 지원할 수도 있고 그런 국가에 대출해준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도 있다.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위기 당시는 이런 나라에 대규모 자금을 대출해준 미국 금융기관에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러나 구제금융만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특히 당시는 미국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이 제공된 것이었기에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재정 건전화를 강제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이 나라들은 부도 상태만 간신히 넘긴 채 길고 긴 경기 침체와 불황의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선례가 말해주는 것은 재정협약의 중요성이다. 유로존 국가의 재정에 대한 신뢰가 금융시장에서 회복되도록 재정 적자와 부채 규모를 일정 수준에서 제어하는 재정협약 준수가 중요하다. 재정 불균형을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재정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에서 경제를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다. 이처럼 구제금융을 제공해 문제를 일단 진화하는 동시에 재정협약을 준수하면서 재정을 건전화하는 것이 어느 정도 대안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의 현 정치 지형이 재정 위기 국가의 정책을 이에서 멀어지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따라서 지금은 유럽 국가의 정부 지출 확대로 국제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그들이 재정 건전화 조처를 진정성 있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면서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에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