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해외 입양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전문가나 입양 부모의 입을 통해 알려졌어요. 버려진 아이가 입양 부모를 만나 가정을 찾았으니 '입양=자비로운 선행'이라는 측면만 부각돼 왔지요. 하지만 입양인들이 다른 인종 사회에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차별이나 고통,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입양 보내야만 했던 어머니의 삶에 대해서도 이제는 들여다봐야 합니다."

신간 '인종 간 입양의 사회학'(뿌리의집)은 한마디로 '해외 입양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 해외로 입양된 당사자 25명과 관련 학자 4명의 글을 묶은 책으로, 미국에서 2006년 발간돼 화제를 모았다. 인종 간 입양이란 입양 가정의 인종과 입양아동의 인종이 다른 경우를 뜻한다. 저자 중 한국계 입양인이 11명이나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책을 엮은 대표 편집자 제인 정 트렌카(40)씨도 한국계 입양인. 2003년 자전소설 '피의 언어'를 출간한 그는 10일 "당시 여러 곳을 돌며 출판기념회를 하던 중 만난 해외입양인들에게서 파란만장한 사연을 들었다. 기존의 입양관련 서적에선 볼 수 없는 이야기였다"며 "백인주류사회에서 간과됐던 성인 입양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필요하다고 절감해 책으로 출판했다"고 했다.

"사회의 인종차별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을 방어할 정신적 능력을 입양 가정 내에서 전혀 키울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인종적 고민에 대해 입양 부모의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거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 만에 네 살 친언니와 함께 미국 미네소타로 입양됐다.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생모가 입양기관의 말만 믿고 해외 입양을 결심했다고 했다. "엄청난 부잣집에 양부모 모두 변호사이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사진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했답니다. 거짓말이었어요. 양부모는 변호사도 아니었고 제게 한국이나 한국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생모에게서 온 편지도 모두 버렸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우체통에서 생모의 편지를 발견한 후부터 양부모 몰래 생모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제인 정 트렌카씨는“한국은 경제 대국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아동을 해외로 내보내는 희한한 나라”라면서“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획기적 지원을 하는 것이 입양문제를 푸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책에 실린 적나라한 경험담들이 한국인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한국계 입양인 수나씨는 백인 부모로부터 주입된 '한국 폄하' 시각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아프게 고백하고, 재란 김은 사립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찾았다'고 말한다.

책은 점차 산업화되어 가는 입양 문제도 제기한다. 제인 정 트렌카씨는 "국제적 입양산업이 직접적으론 한국에 1년간 15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안겨줬으며, 간접적으로는 한국 정부의 사회복지 비용을 절감시켰다"고 했다. "요즘 미국의 입양 부모들은 아이 한 명당 평균 3만5000달러를 미국 기관에 지불합니다. 내가 입양됐던 1970년대에는 1000달러 정도였는데, 우리가 많이 비싸졌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6·25 전쟁과 더불어 시작된 해외입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입양아동의 약 90%가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이라며 "미혼모가 스스로 아이를 키우기에는 사회적 차별이 여전하고 지원도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이끄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은 지난해 5월 11일 '입양의 날'을 '싱글맘의 날'로 부르자고 선포했다. 입양을 권장하기보다는 싱글맘들의 권리를 보장해 입양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 책을 적응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을 모아놓은 것으로 폄하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토비 도슨 등 성공한 해외 입양인의 금의환향 사례에 가려 조명받지 못했지만, 이들은 사회부적응자도 아니고, 실패한 사람들도 아니에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입양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