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미 바이러스.'

A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 박영호(가명·11)군이 동급생 세미(가명·11)에게 붙인 별명이다.

영호가 인터넷 카페에 세미 얼굴을 기괴하게 바꾼 사진을 띄우자,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악성 댓글을 달았다.

사이버 세계에서 시작된 조리돌림(여럿이 1명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 스멀스멀 현실세계로 번졌다. 세미가 학급문고를 만진 뒤 다른 아이가 근처를 지나가면 남자아이들이 킬킬대며 소리질렀다. "그거 만지지 마! 세미가 만진 거 만지면 손이 썩어."

세미 엄마가 담임과 상담했다. 담임은 다른 반 교사들에게 "세미가 따돌림당하지 않게 다들 주의를 주라"고 했다. 하지만 이 부탁이 역효과를 낳았다. 전교에 소문이 좍 퍼져 그동안 모르던 아이들까지 다 알게 됐다. 이른바 '전따'(전교생이 따돌리는 아이)가 된 것이다.

이 낙인이 중학교까지 따라왔다. 세미는 중2 때인 작년 9월부터 등교를 거부했다.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세미 부모가 정신건강 전문가를 집에 불렀지만 세미는 "다 필요 없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세미 엄마는 "독학해서 대학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올 초부터 다시 등교하고 있기는 한데, 지금도 심리가 불안정하다"고 했다.

때리는 것만 학교폭력이 아니다. 초등학교 교실조차 '조리돌림' 하듯 여러 명이 한 명을 떼지어 놀리는 심리폭력이 횡행한다. 이것이 인터넷·SNS·휴대전화와 결합해 사이버 폭력으로 번지고 있다. 당하는 아이 입장에선 오랜 기간 마음의 상처로 남는 '인격살인' 수준이다.

작년 11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전국 초·중·고등학생 12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세 명 중 한 명이 인터넷으로 남을 따돌리거나(29.3%), 휴대전화로 욕을 하거나(30.5%), 인터넷으로 나쁜 소문을 퍼뜨린 적이 있다(30.7%)고 했다.

이유미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학교폭력SOS지원단장은 "피해자가 느끼는 충격은 강렬한 반면, 가해자가 느끼는 죄의식은 희박하다는 점이 사이버 폭력의 특징"이라고 했다.

중1 이희경(가명·13)양은 스마트폰에 '미운놈 때리기 게임'이라는 무료어플을 내려받았다. 부모 세대가 오락실에서 하던 두더지게임을 휴대전화로 옮겨오면서, 때리는 대상을 두더지 대신 미운 사람(사이버 폭력 대상)으로 바꿔놓은 어플이다. 희경이는 같은 반 영주(가명·13)의 사진을 두더지 자리에 올려놓고, 쉬는 시간마다 영주 면전에서 이 어플을 실행했다. "내가 너를 직접 때리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때리고 싶어."

당하는 영주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상황이지만, 괴롭히는 희경이는 "내 폰으로 내가 즐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더 큰 공포는 따로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메신저 때문에 아이들이 24시간 일진(一陣·학교 폭력조직)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됐다는 점이다.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소장은 "옛날에는 일진에게 맞아도 집에 가면 혼자가 됐는데, 요즘은 일진이 수시로 문자 메시지와 메신저를 보내 아이를 통제한다"고 했다.

한 왕따 중학생은 "일진이 '내 전화 늦게 받으면 1분에 한 대'라고 해서 엄마와 밥 먹다가도 수시로 휴대전화 들고 뛰어나간다"면서 "인터넷 메신저에 '8시에 (특정 장소에) 들어와 있으라'고 했는데 그 시간에 안 들어가 있으면 그 다음 날 죽도록 맞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