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곳 한강 선착장에 오기 위해 지하철 여의나루역에 내리셨죠? 저기 보이는 여의도가 당초 무슨 뜻인지 아세요? 너 여(汝), 어조사 의(矣) 자를 써서 '너나 가져라'라는 의미였지요."

역사학자이자 스테디셀러 '서울은 깊다'의 저자인 전우용 박사의 설명에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선시대 여의도와 밤섬은 강을 왕래하는 배를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곳으로 쓰였다.

국립중앙도서관·조선일보·교보문고가 공동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이 14일 '인문학의 젖줄, 한강의 섬을 걷다'를 주제로 2012년 첫 답사를 시작했다. 인문학의 여정에 참가한 100여명은 300석 규모의 전용 크루즈를 타고 여의도 선착장~노들섬~서래섬~난지도 선착장~구암공원~선유도로 이어지는 전 박사의 선상 강의에 흠뻑 젖어들었다.

태백산 검룡소에 발원한 물줄기는 강원·충청·경기도를 지나며 어엿한 강을 이루고, 이 강이 금강산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강과 합치는 곳이 양수리(兩水里)다. 여기서부터 남한강과 북한강의 구분이 없어져 그냥 '한강'이 된다. "한반도 제일의 기품과 위엄을 갖춘 이 큰 강은 끝으로 교하(交河)에서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앞까지 달린 뒤 바다가 됩니다."

지금의 서울 앞에 도달한 한강물은 북쪽에 우뚝 솟은 북한산, 옛 이름 한산(漢山)을 마주하게 된다. 이 땅에 지리도참설이 도입된 이래 산의 남쪽·강의 북쪽, 즉 산남수북지(山南水北地)를 '양지(陽地)'라 불러왔다. '한양(漢陽)'은 '한산 이남, 한수 이북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 땅에 한양군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은 것은 풍수지리설 도입 초기인 8세기의 일이지요. 이후 한반도 내 많은 지명이 풍수지리적 사고와 관련되어 있으나 이토록 분명하게 '양지'임을 표시한 이름의 도시는 한양 말고는 없습니다."

모든 지명은 다 연원이 있었다. 뽕나무를 기른 잠실(蠶室), 겨울철에 얼음을 캐어 저장하는 빙고(氷庫), 권세가들이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지은 압구정·망원정(亭). 뱃길 주변에는 사람과 물자를 싣고 부리기 위한 나루가 만들어졌다. 모래밭이 넓게 펼쳐 있어 너른나루·광진 등으로 불린 광나루, 백로가 많이 날아와 '노들'이란 이름이 붙은 노들나루(노량진), 한강 상류에서 반입되는 모든 화물의 집산지였던 송파나루, 바다를 거쳐 들어오는 해산물의 집산지 마포나루….

선유도를 둘러보면서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로부터 섬의 특별한 조경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했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뜻의 선유도(仙遊島) 공원은 양화대교 아래 선유 정수장 시설을 활용한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이다. 본래 섬이 아니라 산(해발 40? 선유봉)이었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큰 홍수 이후 한강변에 제방을 쌓기 위해 암석을 채취하면서 산이 섬으로 변한다.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을 뜯어내고 기둥만을 남겨 담쟁이로 뒤덮인 '녹색 기둥의 정원', 약품 침전지를 재활용한 '시간의 정원' 등에 대해 배 교수는 "벽과 기둥 등 건물 잔해가 주는 쓸쓸함과 쉼 없이 부는 강바람이 자아내는 특유의 모호한 분위기가 '숭고미(崇高美)'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선유도 내 한강전시관에서 '한강의 조선 미술'에 대해 강연한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진경산수화 거장 겸재 정선(1676~1759)의 '선유봉'과 한강 서편의 파산(巴山)·난지도(蘭芝島) 주변을 표현한 '소악후월(小岳候月)' 등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적막이 감도는 배경 묘사와 적절한 여백 설정을 통해 시운(詩韻) 넘치는 풍경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서 외손주와 함께 참가한 강해경(67)씨는 "가까이에서 보니 밤섬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여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교사 엘리자베스 아폴로니오(24)씨는 "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특히 관심이 많아 참가했다"면서 "하나의 강(한강) 주변에 이렇게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가 많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한강에 대한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차 참가했다는 박승규(46) 춘천교대 사회과 교수는 "여러 섬에 내려 직접 걸어 볼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