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시즌이 되면 주말이 겁나요. 지난 일요일 남편과 함께 예식장 세 군데 돌았어요. 아침·저녁에 결혼식 뷔페 세 끼까지 하루 다섯 끼 먹었지요. 겨우 집에 와서 반주(飯酒)로 얼근히 취한 남편 옆에 눕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더라고요. 체한 것 같아 일어나서 바늘로 손을 따면서 '이게 다 인맥관리'라고 생각했어요."

보험설계사 권상숙(가명·56)씨는 결혼 적령기 아들·딸이 하나씩 있다. 하지만 지인 결혼식 챙기는 게 꼭 자식 때문은 아니었다. 평소 아무리 잘해도 결혼식 날 얼굴 비추지 않으면 두고두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더 크다. 같은 시간대에 결혼식 두 건이 겹쳐 부득이하게 한쪽은 못 간 일이 있었다. 평소 그리 친한 동창도 아니었는데, 다음에 만났을 때 동창이 "너 그때 안 왔지? 기집애" 하고 눈을 흘겼다. 권씨는 "욕먹으면 피곤하니까 그 뒤로는 하루 세 건이든 네 건이든 꼭꼭 참석하고 정 못 가면 인편에 축의금 봉투라도 보낸다"고 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재미교포 이용수(33·음향 전문가)씨는 "미국에선 정말 친한 사람만 초대해 축제처럼 즐기기 때문에 청첩장을 받으면 '이 사람이 나를 정말 돈독하게 여기는구나' 싶어 뿌듯하고 다녀온 뒤에는 관계가 한층 친밀해진다"고 했다. 싱가포르 예비 신부 신디(32·회사원)·이탈리아계 캐나다 신부 로리(32)·일본 신부 다카하시 사치에(30)씨 등 취재팀이 전화와 이메일로 만난 외국인이 다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느 범위까지 초대했느냐"는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당연히 친한 사람만 초대하지요. 친하지도 않은 사람을 왜 초대해요?" 이 상식적인 얘기가 전혀 상식이 아닌 나라에 우리는 산다.

본지가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가 "양가 친척과 가까운 사람만 부르는 게 좋다"고 했다. 이상적인 하객 규모는 200명 이상~400명 미만이라는 응답이 절반이 넘고(51.7%), 200명 미만이 좋다는 응답도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나왔다(18.1%).

하지만 이런 생각을 정말 실천한 사람은 적었다. 실제 참석자가 200명 이상~400명 미만이었다는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됐다(47.2%). 200명 미만으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람은 극소수(6.6%)였다. 전체 조사대상자 중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청첩장을 더 돌리게 되더라"고 했다(43.0%).

조사를 분석한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유성렬 소장(백석대 교수)은 "혼주·신랑·신부·하객을 막론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트레스를 주는 구조가 형성됐다"면서 "원인을 파고들면 결국 '본전' 생각 아니겠느냐"고 했다.

어지간히 소신 있는 혼주가 아니면 체면과 허영 때문에 "하객이 너무 없으면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안 불렀다고 욕먹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축의금 없이 순전히 자기 돈으로 번듯한 식을 올리자니 비용도 부담스럽다. 그 결과, 지금껏 남들 결혼식 가면서 피곤하다고 투덜거렸으면서, 자기 차례가 오면 본전 생각이 나서 남들처럼 청첩장을 돌리게 된다. 신랑·신부 입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은 10명 중 1~2명이었다" 소리가 나오고, 하객은 하객대로 "얼른 혼주와 눈도장 찍고 밥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함께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갔어요. 특급호텔이라 그런지 으리으리하더군요. 축의금으로 10만원 들고 갔는데 차마 둘 다 식장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2인분 20만원 낼 수도 없어 난감했어요. 결국 아내가 1시간 30분 동안 차 안에서 기다렸어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죠."(강규남·가명·63·퇴직 공무원)

보험설계사 권씨의 경우, 최근 반년 동안(작년 10월~올해 3월) 경조사비로 218만원을 썼다. 월평균 36만3000원꼴이다. 육촌동생(30만원)·남편 친구(10만원)·권씨 친구(10만원)가 한꺼번에 자식 결혼식을 치른 지난달 31일에는 축의금으로 50만원을 썼다. 이 사례를 들은 김순자(가명·63·중소기업 관리직)씨가 "어휴, 그건 약과"라고 했다.

"저는 작년 5월에 하루에 여섯 건이 몰린 적도 있어요. 오전 11시에 한 건, 정오에 두 건, 오후 1시·2시·3시에 각각 한 건…. 정오에는 '두 탕' 뛰느라 혼주와 눈도장 찍은 뒤 신부 입장도 못 보고 바로 다음 식장으로 뛰어갔어요. 우리 애들 결혼할 때 온 사람들이니까 받은 만큼 돌려준다고 마음먹고, 아침 일찍 파스 붙이고 나가서 기어이 다 돌았어요. 하루 60만원 나갑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