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아버지의 나이가 많을수록 자녀의 자폐증 발병 위험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하버드·예일·워싱턴대학 연구진이 자폐증 어린이와 그 부모의 유전자 배열 순서를 분석해 내놓은 독립적인 세 개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4일 이같이 보도했다.

세 연구진은 자폐증 징후가 없는 부모와 이들에게서 태어난 자폐증 자녀의 유전자 배열 순서 정보를 분석했다. 이들 가족의 경우 자녀의 자폐증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전후 과정에서 아이의 유전자가 자발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대상인 자폐증 아이들의 유전자 중 세 개의 유전자(CHD8·SNC2A·KATNAL2)에서 공통적으로 자발적 변이가 발견됐다. 이때 돌연변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자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모계 유전자에서 일어나는 경우보다 네 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워싱턴대 연구진이 밝혔다. 자녀의 자폐증 발병 원인이 난자보다 정자의 결함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또 35세 이상 남성의 경우 자폐증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는 정자를 생산할 위험이 25세 이하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40대 남성이 자폐증 자녀를 가질 확률이 20대 이하 남성보다 6배 높다는 기존의 한 연구 결과에 부합한다고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연구에 참가한 조셉 벅스바움 '시버 자폐증 센터' 이사는 자폐증의 부계 유전과 나이 연관성에 대해 "남성들은 매일 정자를 생산하기 때문에 자녀에게 물려주는 유전자 코드에 오류를 일으킬 만한 정자를 생산할 가능성이 크고, 나이가 들수록 그럴 위험이 더 커지기 때문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가 자폐증을 일으키는 유형과 경로를 보다 명확히 설명할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반 아이클러 워싱턴대 교수(유전공학)는 "연구 성과는 빙산의 일부 중 일부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어디서부터 (연구를) 시작할지에 대해 동의하게 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BBC·ABC 등 외신들은 세 개 대학 연구팀의 발표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돌연변이가 뇌 발달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규명해야 할 과제다.

과학자들은 과거 자폐증 유발 요인이 유전이냐 환경이냐를 두고 수십년간 공방을 벌여 왔으나, 최근 학계의 정설은 80~90%가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는 쪽으로 굳어졌다.

최근 미국에선 자폐증 어린이가 늘면서 이로 인한 가족·사회 문제가 부각돼 왔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자폐증 또는 그와 유사한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 drome·대인관계나 행동과 관련한 장애) 판정을 포함하는 자폐 범주성 장애(ASD)를 판정받은 미국 내 8세 어린이는 88명 중 1명꼴(2008년 자료)이라고 지난 2일 밝혔다. 이는 110명 중 1명꼴(2006년 자료)로 집계된 2009년 조사 결과보다 23% 증가한 매우 높은 발병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