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 사찰(査察)을 둘러싼 정치권 폭로전이 상대방에게 모든 허물을 덮어씌우려는 진흙탕 싸움으로 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이 제기된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 사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이인규 전 지원관 등 핵심 직원 4명이 총 195차례 청와대를 방문해 민정수석실의 권재진 수석(현 법무장관),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 이강덕 공직기강팀장(현 서울경찰청장)을 만났다고 폭로했다. 이걸 보면 민간인 사찰과 은폐의 몸통이 민정수석실 윗선임이 분명하다고도 주장했다. "박정희 시대의 사찰 유령이 떠돈다"며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겨냥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야당이 현 정부의 사찰 문건이라고 폭로한 2619건 중 80%가 노무현 정부 시절 것이고 당시에 실제 민간인 불법 사찰이 있었다고 했다. 노 정부 시절 민간인의 금융 계좌를 불법으로 추적했다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역대 정권의 모든 불법 사찰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통합당은 "(우리의 집권 때는) 적법한 감찰 활동만 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벌어졌던 불법 도청과 사찰로 권력의 핵심인 국정원장이 감옥에 간 사실조차 잊어버렸거나 모르쇠로 버텨야 한다고 일부러 시치미를 떼는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국가기록원 기록까지 뒤지며 "야당 집권 때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았느냐"고 맞불을 놓는 것 역시 볼썽사납다. 이 정권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을 한 건 검찰 수사로 이미 드러났고 조직적 증거 파기와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다.

현 정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각 부처에서 차출된 공무원 40여명이 7개 팀에 나뉘어 활동했다. 박정희 정권 이래 역대 정권이 이런 유(類)의 공직 사회 암행 감찰 조직을 운영해왔다.

이번에 일부 사찰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관가(官街)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감찰 조직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가 처음 드러났다. 이들이 국민 세금을 쓰며 모았다는 정보 대부분이 여의도 증권가 루머 같은 허접스러운 뒷이야기들이다. 사설 흥신소처럼 공직자들의 불륜(不倫)을 캐기 위해 미행이나 도청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간다. 역대 대통령과 정권 실세(實勢)들이 이런 쓰레기 정보로 국정을 운영하고 나라 안위(安危)를 살피는 데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의 권력자들은 비밀 조직을 통해 수집한 상대방 약점을 가지고 자기 진영의 군기를 잡고 반대 세력의 비판의 날을 무디게 할 수 있으려니 생각해왔다. 그런 정보 정치가 독재 정권 시절엔 어느 정도 통했으나 인터넷과 SNS로 정보가 사통팔달(四通八達)하는 요즘 세상에 뒤 캐기와 약점 잡기로 공직자와 반대파를 길들이려 하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불법 사찰은 그 비밀도 오래 지켜지지 않아 정권이 끝나기 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정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여야 모두 이번 사태를 각성의 계기로 삼아 국가 운영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저질(低質)의 호기심이나 채울 뿐인 불법 정보 수집과 불법 사찰에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시대와 확실하게 결별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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