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 있지 한국 기관 이름을 어떻게 그대로 베껴요. 'I(아이)'는 뺍시다." 지난해 6월 일본 최대 디자인 기관 '일본산업디자인진흥회'는 조직 개편과 함께 기관명을 '일본디자인진흥회'로 바꿨다. 영문 이름은 'Japan Industrial Design Promotion Organization(JIDPO)'에서 'Japan Institute of Design Promotion(JDP)'로 바뀌었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Korea Institute of Design Promotion)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당초 영문 약자도 'KIDP'와 유사하게 'JIDP'로 하려 했지만 내부 반발이 거셌다. "과거 우리를 벤치마킹했던 KIDP의 약칭까지 따라 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결국 공식 영어 약칭은 'I'가 빠진 'JDP'로 했다는 전언이다.

한국의 정부 주도형 디자인 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과거 우리가 벤치마킹했던 디자인 선진국에서 한국을 거꾸로 배우러 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덴마크는 2012년 이후의 국가 디자인 진흥 정책 '디자인 2020 비전' 수립을 준비하면서 한국에 조사위원을 파견했다. 영국 정부도 2010년 한국에 '디자인 미션(Design Mission)'단을 파견해 한국 디자인의 급속한 성장 배경을 파악했다. 프랑스공예협회(AAF)는 최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사업을 진행하면서 한국 정부의 장인 육성·발굴 정책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한국이 디자인 정책의 본보기로 통한다. 태국의 수출 진흥 기구인 DEP 산하 '제품가치진흥실'과 싱가포르의 디자인 기관 '디자인 싱가포르 카운슬'은 "한국의 디자인 진흥 정책과 사업을 많이 참고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국디자인진흥원 관계자는 "한국에선 정부 주도의 디자인 정책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지만, 한국 디자인의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세계 디자인 학계의 '디자인 혁신' 사례 연구에서 한국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