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장근석과 소녀시대의 윤아가 출연하는 KBS 드라마 '사랑비'의 제작발표회. 이곳에서 뜻밖의 소동이 벌어졌다.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기자신분증까지 찬 A와 행사 관계자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A가 "나도 기자이니 들여보내 달라"며 내민 명함엔 중화권 언론사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행사 관계자는 "기자를 사칭한 팬인 것 다 안다"고 맞섰다. A는 결국 중국어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장근석의 '사생팬(사생활까지 쫓는 극성팬)'으로 밝혀졌다. 이날 행사 준비 측은 A 외에도 기자를 사칭해 행사장에 들어온 10여명의 여성팬을 '적발'해냈다.
이처럼 기자를 사칭하면서까지 좋아하는 스타에게 접근하려는 팬들 때문에 연예인 소속사들과 홍보대행사 등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극성 팬들 중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 언론사의 가짜 명함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기자를 사칭하는 경우도 있고, 어설픈 영어를 쓰면서 외국인 행세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유명 아이돌이나 한류 스타가 참석하는 자리에 오는 기자의 10%는 가짜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사진 기자를 가장하는 일부 극성 팬은 진짜 사진 기자들보다 더 비싼 카메라 장비를 들고 다니며 신분을 위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한 홍보 대행사 직원은 "공식 행사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찾아와 자리를 선점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알고 보면 기자가 아니라 팬"이라고 했다. "이런 팬심을 악용해 심지어 1년 단위 유효 기간을 적은 가짜 기자 출입증을 10만원씩 받고 만들어 파는 여행사도 있다고 들었다. 이들은 한류스타 기자회견장을 여행상품에 끼워팔기도 한다. 팬의 이름으로 인터넷 기사를 만들어 뿌려주면서까지 기자 사칭을 도와주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홍보대행사 등은 이를 막기 위해 낯선 매체 명함을 들고 오는 기자에겐 "매체를 소개하는 자료를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지만,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이들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토로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배우 장근석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대행사는 안내 자료에 아예 '기자를 사칭하는 사생팬을 엄격히 제한하려고 하니 기자들은 꼭 명함을 지참해달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작년 한 영화 제작발표회에서는 사생팬들이 자리를 다 차지해버려 앉을 곳이 없던 취재진들이 행사를 보이콧하기도 했다"며 "갈수록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사생팬을 막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