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계의 전설이 된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이와 함께 분주해진 가요계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송창의 CJ E&M 방송사업부문 프로그램 개발 센터장이다. 그는 1992년 3월 MBC PD로 재직 당시 '특종! TV연예'를 통해 서태지와 아이들을 세상에 소개한 인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를 했다는데 내가 전화를 더 많이 받는 것 같다"는 송창의 본부장은 담담하게 서태지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대중은 '특종!TV연예'에 출연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습을 기억하지만 송창의 본부장은 책상 위에 놓였던 데모테이프로 서태지를 떠올렸다.

" '특종!TV연예' 타이틀곡을 서태지와 아이들이 맡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매니저가 책상 위에 데모테이프를 놓고 갔는데 그걸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듣기 힘든 음악이었다. 그래서 매니저를 통해서 누군지 알아보게 됐고 색다른 타이틀 음악을 고민하던 차에 부탁을 하게 됐다. 막연했지만 괜찮은 게 나오지 않을까라는 예감이 있었다. 그 후 서태지가 1분짜리 타이틀 배경음악을 만들어왔는데 1집 수록곡 중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같은 노래를 리믹스 한 거였다. 백퍼센트 만족했다. 내가 생각했던 타이틀을 그대로 만들어왔었다."

타이틀곡에 만족한 송창의 PD는 당시 기획하고 있던 새 코너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섭외했다.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도 있었다. 지금은 가요계의 전설이 된 그룹이지만 이들의 첫 무대도 보통의 신인 가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신인 가수들이 스튜디오에 오면 눈치를 보고 그런다. 서태지와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특별한 첫 인상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게 눈치 보면서 그냥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처음 봤을 때 정말 보통 신인 가수의 느낌이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면 자기 취향이 생기지 않나. 서태지 음악이 내 취향이랑 딱 맞았다. 그래서 자꾸 우리 프로그램에 노래를 틀고 싶고 그랬던 건 사실이다.(웃음)"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등장은 획기적이었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심사위원들의 독설이 하나의 유행코드로 자리 잡은 요즘이지만 90년대에는 심사를 하는 사람도 심사를 받는 사람들도 세차게 몰아 세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 A급 가수인 전영록이 있었고 작사가 양인자, 작곡가 하광훈이 있었다. 전영록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심사평을 했는데 대체적으로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또 첫 회다 보니 이전 출연자와 비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총점은 7.6 또는 7.8로 기억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송창의 본부장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파죽지세의 인기를 누렸다. 가요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음악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한국 가요의 수준을 한 시대 업그레이드했다.

"1집 앨범 성공을 하고 나서 2집 준비한다고 방송을 다 끊었다. 그 때는 그런 게 없었다. 밤새서 하든 알아서 하는 거지 방송을 쉬면서 앨범을 준비 하지는 않았는데 쉰다고 인터뷰를 안했다. 두 달 쯤 뒤에 근황 인터뷰를 하겠다고 카메라 한 대 들고 작업실을 찾아갔다. 20년 전에는 나름대로 PD라고 하면 힘이 있었는데 절대로 안 하겠다고 하더라. 이상한 놈이다 싶었는데 체면이 구겨져 많이 당황했다. 또 우리만의 인연이라는 게 있는데...(웃음) 절대 용납을 안 하더라. 이 친구 고집이 보통 고집이 아니구나.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캐릭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존심이 구겨진 송창의 본부장을 위해 서태지가 내민 카드는 2집 컴백 후 첫 출연을 송창의 본부장의 프로그램에서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여가'를 발표한 서태지는 당연히 약속을 지켰다. 그는 서태지를 대중 가수가 아닌 로커라고 표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일 때보다 서태지로서 더 서태지다운 음악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서태지는 로커다. 혼자 나와서 춤을 추는 모습 본 적 있나? 기껏해야 헤드뱅잉을 하는 정도다. 록밴드 시나위로 활동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노래에 록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다. '필승'이 대표적이다. 서태지의 진짜 모습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닌 서태지 개인 앨범을 통해 제대로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데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태지라는 이름이 전설처럼 회자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송창의 본부장은 "무슨 말이 필요할까"라며 웃어보였다.

"비틀즈가 청년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힘이라는 게 실로 막강하다. 그 때의 젊은이들이 죽지 않았다. 그 사람들의 정서에 어떻게든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그 사람이 하는 일과 사회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본인이 낳은 애들한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서태지라는 이름은 지금도 존재하고 영향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