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사업 부지 안의 속칭 '구럼비 해안' 바위를 부수는 발파작업이 7일 시작됐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이날 발파 공사에 반발해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 사전 예고를 해군측에 통보해 중단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예정대로 공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해군기지 시공업체는 이날 오전 11시 20분쯤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서쪽 200m 지점에서 1차 발파를 시행한 데 이어 오후 4시부터 5차례에 걸쳐 추가로 연속 발파작업을 실시했다. 공사에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과 단체 회원 100여명은 발파가 시작되자 도로를 점거하고 쇠사슬로 몸을 감아 '인간 방벽'을 만드는 등 항의하다 19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4명은 카약을 타고 해상으로 건너가 발파작업 지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제주해군기지사업은 지난해 9월 반대 세력측이 점거 농성 중이었던 강정마을 중덕삼거리에 경찰 병력이 투입돼 공사 펜스를 설치하면서 정상화됐다. 이후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반대파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은 구럼비 바위 발파를 구실로 4월 총선의 새로운 이슈 메이킹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공사에 찬성하는 시민단체 회원 등 1500여명은 8일 제주도청과 강정마을 앞에서 찬성 집회를 열기로 했다.

◇왜 반대하나

우근민 제주지사까지 나서서 공사 진행에 반대하는 표면적 이유는 두 가지다. 제주는 최근 정부가 해군기지 항만 내 서쪽 돌출형 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힌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설치방식을 변경할 경우 기존 공유수면 매립공사 승인을 받을 당시 설계와 달라지므로 다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또 정부가 당초 약속한 대로 민·군 복합항에 15만t급 민간 크루즈가 안전하게 입·출항할 수 있는지도 재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5만t급 크루즈 선박 운용은 국무총리실이 검증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방부가 단독 시뮬레이션을 시행해 지난달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사안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 시뮬레이션이 제주측 인사를 배제한 가운데 이뤄졌기 때문에 다시 실시하자는 것이다.

국방부는 "시뮬레이션은 누가 참가하든 비슷한 결과가 나오게 되며, 재차 실시할 경우 2개월 이상이 소요돼서 공사가 더욱 지체된다"는 입장이다.

◇해군기지 공사는 계속될 전망

우근민 제주지사는 해군에 20일로 예정된 청문 출석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방부는 "청문 절차에는 협조하되 공사는 계획대로 실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는 또 "제주지사가 공사 정지 명령을 내릴 경우 지방자치법에 따라 국토해양부와 협조해 이를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지방자치법 제169조에 따르면 지자체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되면 시·도에 대해 주무 장관이 시정을 명하고 해당 처분을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

한편 지자체장은 주무부 장관의 처분에 대해 15일 이내에 대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국방부가 공사 중지는 불가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이상 제주도와의 갈등이 커질 경우 결국 해군기지 문제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서귀포=이종현 객원기자

☞구럼비 해안은… 구럼비 나무 많아 붙은 이름
기지 건설 반대 세력은 "지질학적 가치 큰 자연 유산", 문화재청 "제주에 흔한 지형"

'구럼비 해안'은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동남쪽 바닷가 일대를 지칭한다.

이 일대에 구럼비 나무(까마귀쪽나무의 제주방언)가 많이 서식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럼비 해안 바위는 1.2㎞ 길이의 한 덩어리로 된 용암 바위를 지칭하며, 용천수가 솟아 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기지 반대 세력은 "지질학적 가치가 큰 자연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해군은 기지 공사 후 이 바위 일부를 수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