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민(가명·11·서울 구로동)군은 지난 2학기 한 달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다. 유급을 걱정한 담임교사가 박군의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군은 "학교에 안 가고 좋아하는 게임만 하면 정말 행복하다"면서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실력을 알아보고 칭찬을 해준다"고 했다.

5년 전부터 실직 상태인 아버지는 하루 종일 술만 마시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했다. 박군은 술 취한 아버지 눈을 피해 15세 이상만 할 수 있는 FPS(First-person shooter·총쏘기 게임)게임을 하며 총질을 했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가출을 두 번 했고,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붙들려 가기도 했다.

담임교사는 지난해 11월 어머니를 설득해 박군을 한국정보화진흥원 상담센터로 데려갔다. 박군은 센터에서 "엄마, 아빠는 집에도 없고 욕하고 때리지만 게임 속 사람들은 나를 따뜻하게 대해 준다"며 울었다. 정보화진흥원 고영삼 인터넷중독대응센터장은 "가정에 결핍이 있는 아이들일수록 주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게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저소득층에서 게임 중독자 비율이 높은 이유는, 평소 게임을 끊고 일상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A(7)군이 세간살이가 없어 휑한 집에서 한 시간째 인터넷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A군은 어머니, 형과 함께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A군은 오후 2시쯤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주로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초등 4학년 정주원(가명·10)군 역시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마음 놓고 게임에 빠져들었다. 정군의 아버지는 몇 달에 한 번 집에 올까 말까 하고 어머니는 아침에 나가 밤늦게 돌아온다. 정군을 혼자 두는 게 미안한 어머니는 매일 아침 용돈을 줬다. 정군은 그 돈으로 PC방 단골손님이 됐고 게임 아이템도 사들였다.

정군이 PC방에 다니는 걸 까마득히 몰랐던 어머니는 지난해 11월 PC방 주인에게 아이를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자정이 다 된 시간까지 게임을 하고 있던 정군에게 PC방 주인이 "집에 가라"고 하자 정군은 "내가 왜 나가야 되느냐?"며 대들었다는 것이다.

정군의 어머니는 다음 날 더 많이 놀랐다. 주위의 권유로 상담소를 찾았는데, 정군은 게임 중독과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현재 충동억제제를 복용하면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매일매일 생계를 꾸려가기에 급급한 저소득층 중에서는 이처럼 심각한 중독 상태에 빠져 있어도 관심도 부족하고 형편도 어려워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서정훈(가명·19)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ADHD 판정을 받아 무료 상담치료를 받고 신경정신과에도 잠시 입원을 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서군은 "나는 절대 게임중독이 아니다"라고 우기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10년 넘게 게임중독 상태로 지내고 있는 서군을 걱정한 누나는 지난해 12월 게임중독치료센터에 전화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사는 입원 및 강제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누나는 입원 치료비가 월 100만원 정도 들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뒤 "알겠다"며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상담사는 "이전에도 치료를 받을 때마다 번번이 돈 때문에 중간에 그만둔 것으로 안다"며 "서군의 상태가 매우 심각한데, 돈 때문에 치료를 못 받아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안타까워했다.

2008년 서울대학교와 서울아산병원이 청소년 건강상태 역학조사를 한 결과,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5.5%로 전체 아동 청소년 중독률(2.3%)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중독 어린이들의 상담치료를 하는 박경호언어심리치료실의 박경호 원장은 "저소득층은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그럴 경우 돌봄의 질이라도 높일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원장은 "치료실을 찾은 저소득층 부모들은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데 애들은 게임만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를 상담해보면 '엄마 아빠는 날 전혀 사랑하지 않고, 내가 어려움을 말해도 귀도 기울이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홀로 방치된 외로움과 무서움에 젖은 아이들은 경제형편 때문에 싸움이 잦은 부모를 보면서 어려운 현실을 피하기 위해 게임에 열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지적 기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게임에 중독되는 아이들은 정말 소수"라며 "퇴근한 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아이에게 관심을 쏟아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