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던 서울 중구 장충동 남산 자락 국궁(國弓)터 석호정(石虎亭·사진)이 그대로 남게 됐다. 또 인근 장충테니스장도 당초 계획과 달리 없애지 않고 보강 공사를 통해 외관만 약간 바꾸기로 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하던 '남산르네상스' 사업에 대한 궤도 수정이 하나 둘 본격화되고 있다.

석호정은 지난 2009년 4월 오 시장이 '남산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하면서 남산 생태성을 훼손하는 시설로 분류돼 2013년까지 철거한 뒤 시설을 은평구 불광동 갈현근린공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석호정을 즐겨 찾던 동호인과 지역 주민들이 반발했고, 중구청이 나서 반대 서명부를 돌리고 공청회까지 열며 공방이 끊이지 않았다.

석호정은 조선 선조 때인 1630년 장충단 뒤편에 들어섰다. 이후 철거와 재건을 되풀이하다 1970년 지금 자리에 회원들이 자비로 지어 서울시에 기부했다. 서울시는 지난해까지 "석호정 철거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오 시장이 물러나고 박원순 시장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결국 시는 석호정을 그대로 두고 이전 대상 부지였던 갈현공원 내 자리는 도시농업공원으로 전환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석호정과 함께 철거·이전 대상이었던 장충테니스장(1971년 설치)과 리틀야구장(1969년 건립)에 대해서는 야구장은 예정대로 이전하고, 테니스장은 존치하기로 했다.

이 시설들도 일부 주민들이 "많은 시민이 이용하고 동호인만 1718명에 이른다"며 철거를 반대해왔다.

서울시는 장충테니스장을 지금 장소에 9면 그대로 남기는 대신, 외부에 나무 담벼락을 두르고 나무숲을 심는 등 경치를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래는 2012년까지 도봉구 도봉동으로 옮기려는 계획이었다. 리틀야구장은 예정대로 2013년까지 강동구 고덕동 고덕보금자리 주택 지구 안으로 이사한다.

이런 서울시 움직임에 대해 오 시장 핵심 브랜드 중 하나였던 '남산르네상스'에 대한 사실상 '폐기 선언'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박 시장은 취임 이후 오 시장이 추진했던 남산 중앙정보부 건물 철거를 백지화한 데 이어, 이번에 석호정·테니스장 철거도 없던 일로 했다. 오 시장은 3년 전 남산에서 직접 '남산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중앙정보부 자리는 녹지와 실개천, 장충자락은 항일유적교육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박 시장은 현재 서울시 별관으로 쓰는 중정 건물은 부수지 않고 활용하도록 지시했으며, 일부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만드는 데 협조할 생각이다. 중앙정보부는 남산 본관을 1972년 준공했고, 1981년 이름을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꾸고 나서도 계속 본거지로 삼다가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기면서 건물을 서울시로 넘겼다.

이번 서울시 결정으로 오 시장이 그렸던 '남산르네상스'는 '반쪽'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산책로를 늘리고 서울성곽을 복원하는 등 일부 사업은 마쳤으나, 나머지 사업에 대해 박 시장이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남산르네상스 홈페이지(namsan.seoul.go.kr)는 접속이 끊긴 상태고, 올해 예산 편성안에 '남산르네상스' 관련 항목은 자취를 감췄다. 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디자인, 르네상스, 홍보 세 단어는 금기어"라는 소문마저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