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다. 덩치는 작아도 강단 있고 속이 알찬 아이를 이르는 속담이다. 키 작은 자녀를 둔 부모는 이 말을 위안 삼아 애써 걱정을 삼키곤 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옛말이 됐다. 한국인의 평균 신장이 예전보다 커지면서 키 작은 아이가 유난히 눈에 띄는 세상이 된 탓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키가 생각만큼 자라지 않으면 발을 동동 구른다. '작은 덩치 때문에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면 어쩌지?' '외모 콤플렉스에 짓눌려 스트레스라도 받진 않을까?'

이기형(52) 고려대학교(이하 '고려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자녀 키에 관한 학부모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전문가다. 그가 근무하는 고려대병원 내분비성장 클리닉에선 하루 종일 어린이 키 성장 관련 진료가 이뤄진다. 지난 18일에도 이 교수의 진료실 앞은 밀려드는 상담자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그 중엔 새터민 김강인군(가명·12세)도 있었다. 김군의 누나는 키 성장 속도가 더뎌 이곳에서 성장호르몬제 치료를 받고 있다. 역시 또래에 비해 왜소한 편인 김 군은 자신도 누나처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클리닉을 찾았다. 이날 이기형 교수와 김강인 군이 진료 도중 나눈 얘기들을 양측의 허락을 얻어 지면에 옮긴다.

◇사춘기 키, 연간 8㎝ 이상 자라야 정상

김강인: 전 친구들에 비해 키가 작아 고민이에요. 키로 번호를 정하면 늘 반에서 1, 2번이죠.

이기형: 지금 키가 정확하게 몇이니?

김강인:
139㎝요. 넉 달 전보다 2㎝ 컸어요.

이기형:
그럼 1년에 6㎝쯤 크겠구나. 각 나이대엔 알맞은 성장 속도가 있어. 사람은 두 살까지 가장 많이 크는데 이땐 1년에 10㎝ 이상씩 키가 자란단다. 그 후론 (1년에) 5㎝ 정도 자라는 게 적당하고. 그러다가 사춘기가 오고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또다시 매년 8㎝에서 10㎝씩 크게 돼. 강인이는 정상 범위에 해당돼.

김강인:
하지만 전 너무 작은걸요.

이기형: 어디 한번 볼까? 선생님한테 한국인의 평균 키를 모아 정리해둔 자료가 있단다〈오른쪽 표 참조〉. 12세 남자아이의 평균은 152㎝니까 네 키와는 10㎝ 이상 차이가 나는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또래와 키 차이가 나는 경우, 또는 성장 속도가 평균치를 밑도는 경우라면 하루빨리 전문가를 찾아가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좋아.

◇실제 나이와 뼈 나이 차 크면 치료 대상


김강인:
어렸을 땐 작았다가 나중에 갑자기 키가 크는 친구도 있잖아요.

이기형: 그런 친구들은 대개 부모님도 뒤늦게 키가 큰 경우란다. 하지만 저신장증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뼈 나이'야.

김강인:
뼈에도 나이가 있나요?

이기형:
그럼. 손목뼈의 개수와 모양, 단단한 정도 등으로 판단하지. 지난번에 찍은 손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얘기해볼까? 강인이 네 뼈는 딱 12세에 알맞은 모양을 갖고 있어. 너처럼 실제 나이와 뼈 나이가 일치하는 경우는 유전적 영향 때문에 선천적으로 키가 자라지 않는 유형이라고 봐야 해. 이럴 땐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아도 극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단다. 다만 네 경우엔 아직 사춘기가 지나지 않았으니 낙담하긴 일러.

◇호르몬 치료는 성장판 닫히기 전 받아야

이기형:
키 크는 데 제일 중요한 건 영양 상태야. 키 성장 관련 검사를 할 때 가장 먼저 정확한 키와 체중을 재는 건 그 때문이지.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키는 25번째로 작고 몸무게는 5번째로 적은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이 아이는 왜 키가 안 크는 걸까? 모르긴 해도 부실한 영양 상태 탓이 클 거야. 치료를 받을 경우엔 2차 성징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해. 사춘기 신체 발달이 끝나면 뼛속 성장판이 완전히 닫혀 키 성장이 멈춰버리거든.

김강인:
성장호르몬 주사에도 부작용이 있나요?

이기형:
그럼. 혈당 수치가 올라가고 여드름이 나며 남자인데도 가슴이 커지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실제로 그런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김강인:
주사는 얼마나 맞아야 효과를 볼 수 있죠?

이기형:
거의 매일, 1년 이상 맞아야지.

김강인:
주사 치료 외에 키가 커지게 하는 방법엔 또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해요.

이기형:
단백질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먹어 영양 상태를 보충하는 게 중요해. 단,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은 되도록 피하렴. 운동도 열심히 해야지. 운동하는 과정에서 몸속 성장호르몬이 자연적으로 생성되거든. 참! 평소 잠도 충분히 자두는 게 좋아.

저신장증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는 키와 체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사진①). 뼈 나이를 알아보기 위해 손목뼈 엑스레이를 촬영한 후(②) 피를 뽑으면 검사가 끝난다.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모자라거나 선천적으로 키가 작은 환자의 경우,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를 받게 된다(③). 최근 나온 주사는 주삿바늘이 숨겨 있어 어린이도 무리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