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좌절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또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재수를 결심한 학생과 학부모는 1년 내내 이런 감정과 싸워 이겨야 한다. 이수자(47), 이병숙(46), 정순희(44), 송광호(51)씨는 각각 지난해 대입에 실패한 자녀를 기숙학원에 보내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다. 이들에게서 듣는 '자녀, 기숙학원 재수 성공시키기 비결'을 사례별로 정리했다.

Case 1. 이수자·이병숙…"아이 성향 따라 고른 학원, 한결같은 기다림으로 응원"

이병숙(왼쪽)씨와 이수자씨.

이수자씨와 이병숙씨는 둘 다 서울 양천구민이다. 이들은 지난 19일 조선일보사(서울 중구 태평로1가) 1층 로비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돼 얘기꽃을 피웠다. “1년간 가슴 졸이며 자녀의 재수 생활을 지켜봤다”는 공통점 덕분이었다. 이날 둘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사회자: 먼저 자녀분의 대학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이수자:
감사합니다. 저희 딸(황수정·서울 금옥여고 졸)은 올해 수능 우선선발 전형으로 성균관대 교육학과 12학번이 된답니다.

이병숙:
제 아들(이동욱·서울 대일고 졸)은 수시 전형으로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에 합격했어요. 지난해에도 몇 군데 붙은 학교가 있었어요. 욕심 같아선 그냥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가 재수를 간절히 원했어요. 재수를 시키기로 한 후 저 스스로 몇 번이나 다짐했답니다. '내년에 결과가 안 좋아도 실망하지 말자'고요.

사회자:
두 분 모두 자녀를 기숙학원에 보내셨는데요.

이병숙:
저희 아이는 자기관리 문제를 이유로 먼저 기숙학원을 원했어요. 주변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돈도 많이 들고 페이스 조절도 힘들다'며 하나같이 반대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말 있잖아요. 재수는 과태료 3000만 원 물고 1년간 학생 자격 정지 당하는 거라고. 자녀를 재수시키겠다고 마음먹은 학부모는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해요.

사회자:
기숙학원 고를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있었나요?

이수자:
저희 아이가 다닌 목동한샘학원은 집과 가까워 원할 때마다 아이를 볼 수 있었어요.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병원에 자주 갈 수 있는 점도 좋았죠.

이병숙:
전 일부러 도심을 피했어요. 남자아이여서 그런지 숙소 관리가 철저한 곳이 좋더라고요. 제 아들이 다닌 청솔 비봉학원 숙소는 방 네 개와 거실로 이뤄져 있어요. 거실은 선생님용, 방은 수강생용이죠. 어디 나가려면 반드시 거실을 지나쳐야 해 무단 외출이 불가능한 구조였어요.

사회자:
자녀를 재수시키며 어떤 점이 특히 힘드셨어요?

이병숙:
수능이 끝난 후부터 석 달간은 마음이 지옥이었어요.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자꾸 자책했죠. 그럴 때마다 '아이를 내 손아귀에서 놔주자' '훌륭한 대학을 나와야만 성공하는 건 아니다' '간섭하지 말고 관심을 주자'라고 계속 중얼거렸어요.

이수자:
제일 힘들었던 건 지난해 9월 모의고사 직후였어요. 그때까지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왔거든요. 당시 딸아이 손은 엉망이었어요. 초조함을 못 이기고 하도 물어뜯는 통에 손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죠. '결과가 좀 나쁘면 어떠냐'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가 '왜 내 성적이 안 오를 거라 단정 짓느냐'며 오히려 핀잔만 듣기도 했어요.(웃음)

이병숙:
하루는 아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에 가보고 싶다더군요. 평소 뭘 부탁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아무 말 없이 데려다줬죠.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놀이터로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나요.

사회자:
마지막으로 올해 자녀를 재수시키려는 학부모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이병숙:
아이에게 '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넌 반드시 해낸다'는 믿음을 주세요.

이수자:
부모의 한결같은 기다림이 중요합니다. '내가 이렇게 불안한데 아이는 얼마나 더 불안할까?'란 마음으로 늘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세요.

Case 2. 정순희…"고심 끝에 한 선택… 믿고 맡겼죠"

엄장원(21·부산 성도고 졸)군은 삼수 끝에 올해 서울시립대 자율전공학부에 합격했다. 엄군의 어머니 정순희(44)씨는 아들이 고3 때도, 재수생 때도 미래를 걱정하거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삼수에 도전한 지난해엔 확연히 달라졌다. 부쩍 진지해진 모습에 가족 모두가 놀랐을 정도.

엄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원 선택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재수까지 실패한 후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이었다. 엄군은 일단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한 후 눈에 띄는 학원엔 전화를 걸어 상담했다. 몇몇 곳은 발품을 팔아 직접 방문했다. 광주대일기숙학원은 그 모든 과정을 거쳐 고심 끝에 결정한 곳이었다.

정씨가 꼽는 광주대일기숙학원의 장점은 소수정예식 수업 운영과 적극적이고 배려심 많은 강사진. “장원이가 체력이 많이 약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학원 측에서 장원이를 위해 특별 식단을 따로 만들어주시더라고요.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동영상을 통해 장원이의 학원 생활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순희씨는 “아들의 기숙학원 생활을 지켜보며 두 가지 점에 놀랐다”고 했다. 재수생 시절에 비해 크게 오른 성적이 하나, 매사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변한 아들의 모습이 다른 하나다. 그는 “일단 아이가 다닐 기숙학원을 선택했다면 그 이후 다른 학원과 비교하는 건 절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이런저런 학원을 자꾸 들먹이면 아이들은 갈팡질팡하게 마련이에요. 학원과 강사, 무엇보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그게 성공적 재수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Case 3. 송광호…"기숙 생활로 자기 관리 철저해져"

지난해 수능을 치른 후 재수를 결심한 송혜진(경기 용인 풍덕고 졸)양은 고심 끝에 아버지 송광호(51)씨가 언어영역 강사로 근무 중인 양평한샘기숙학원에서 1년을 보내기로 했다. 단지 아버지가 계신 곳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이곳 저곳 나름대로 꼼꼼히 비교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학원에서 혜진양은 아버지를 깍듯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송씨 역시 딸을 여느 학생과 다름없이 대했다. 그는 "딸이 내가 있는 학원에 들어온 후 다른 학생들에게도 더 신경쓰게 되더라"며 "모두 내 자식 같아 수업이나 상담 때 이전보다 훨씬 더 귀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딸이 기숙학원에 다니겠다고 했을 때 제일 걱정스러웠던 건 잠 많은 딸이 학원의 규칙적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혜진양은 학원 생활 내내 같은 반 친구 세 명과 팀을 이뤄 새벽이든 일과 후든 틈 날 때마다 공부에 매진했다. 송씨는 "스스로 선택한 재수여서 그런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꿋꿋하게 버텨내 기특했다"고 말했다.

혜진양은 현재 고려대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송씨는 "딸이 재수 기간을 거치며 한층 성숙해진 점이 성적 향상 못지않게 기쁘다"고 했다. "기숙학원에서 오랜 시간 단체 생활을 해서 그런지 시간 관념이 정확해지고 생활 습관이 많이 좋아졌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격도 활발해졌고요."

그가 귀띔하는 '자녀의 성공적 재수를 위한 부모의 자세'는 뭘까. "종종 자기 입장을 자녀에게 강요해 나쁜 결과를 자초하는 부모님들을 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건 학생 본인의 의사예요. 자녀가 본인 생각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