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딸이 남겨놓은 우리 손녀입니다. 아직 만나보진 못했어요."

고봉서(78)씨는 26일 황량한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찍은 검은 얼굴의 열두 살 소녀 사진을 보이면서 "딸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 아이 걱정을 했어요"라고 했다.

이 소녀 이름은 수잔 쳄송(12)이다. 미혼이었던 딸 화숙씨가 지난 2008년 51세 나이에 암으로 숨지면서 아버지에게 남긴 '손녀'다. 아프리카 케냐 소녀 수잔은 테소 지구 앙구라이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부모는 소식이 끊긴 상태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수잔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초등학교에 다닌다.

“새로 생긴 우리 손녀 예쁘죠?” 고봉서씨 부부가 후원하는 아동 수잔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수잔은 지난 2008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씨 부부의 딸 화숙씨가 생전에 후원했던 아동이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고씨의 집 화숙씨 피아노 위에는 화숙씨 사진과 함께 수잔의 사진 4장이 나란히 놓여있다. 2002년 9월부터 항암 투병을 해 온 화숙씨는 2007년 7월부터 숨질 때까지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통해 수잔을 돕고 있었다.

고씨는 장례식을 마친 후 딸의 유품을 정리하다 낯선 흑인 아이 수잔의 사진을 보고서야 딸이 "2만~3만원이면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데…" 하고 중얼거리던 말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고씨는 월드비전을 통해 딸의 후원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버지 고씨가 매달 3만원씩 수잔 후원을 이어받았다. 우리 돈 3만원은 케냐의 성인 노동자 1명이 받는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며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도 있는 돈이다.

고씨의 형편이 넉넉한 건 아니다. 그는 아내 조봉여(81)씨와 132㎡(40평) 아파트를 담보로 만든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해 산다. 한 달 생활비도 100만원밖에 못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씨는 "따로 기부금 통장을 만들어 매달 제때 돈이 빠져나가게 10만원씩은 채워놓는다"고 말했다.

딸 화숙씨는 숨을 거두기 3개월 전부터 옷과 물건을 정리했다. 아끼던 물건들을 버리면서 "내가 간 다음에는 흔적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수잔은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고씨는 딸이 묻힌 남양주 공원묘지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곤 한다. 그는 딸의 묘를 바라보며 "네가 하던 대로 (수잔을) 계속 돌보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수잔의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