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석 수갑 채우는 이선균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매력적인 '까칠한 도시 남녀' 즉 까도남과 까도녀를 연상시킨다.

찡그린 미간에선 범죄자들에 대한 태생적인 거부감과 정의감을 읽을 수 있고, 흉악범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장면에선 뛰어난 신체능력을 감지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추리로 범죄의 전모를 밝혀내는 장면에선 지성미까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만나는 형사들은 영화 속 잘생긴 형사와는 딴판이다. 거듭된 야근 탓에 피로에 찌든 생활, 쏟아지는 사건 때문에 밀려드는 짜증,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범인들을 다루다 거칠어진 성격. 그래서 새롭게 임용되는 새내기 경찰공무원들은 형사 선배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다짐한다. '아, 형사하면 안 되겠구나'

최근 서울 모 경찰서 형사과장과의 만남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만남 도중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전화를 받았다. 최근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한 지구대 순경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어 그래. 이번 사건은 잘 해결했더구먼. 자네 지구대에 있지 말고 내 밑에서 같이 일 해보는 거 어떤가?"

잠시 후 과장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젊은 순경이 그냥 지구대에 남아있겠다며 과장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전해들을 수 있었다.

형사 기피 현상은 비단 요즘의 문제가 아니다. 10여년째 신입들이 지원을 꺼리다보니 각 경찰서 형사들의 연령대는 40대로 훌쩍 올라가버렸다. 예전에는 강력팀마다 20~30대 초반 팀원이 한두명씩은 꼭 있었지만 지금은 팀 막내가 40대인 곳마저 생기고 있다.

◇형사로 일하기 만만찮네

그렇다면 형사가 과연 어떤 일을 하기에 신입 경찰들이 이처럼 기피하는 보직이 돼버린 걸까?

형사란 형사과와 수사과에서 근무하는 사법경찰관(경무관·총경·경정·경감·경위)과 사법경찰리(경사·경장·순경)를 가리킨다. 형사와 달리 행정경찰들은 보건·교통·철도·경제 등 영역에서 질서유지 업무에 집중한다.

형사과 형사는 사복을 입은 채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용의자를 검거하고 체포하고, 수사과 형사는 주로 체포된 피의자를 신문하고 범죄사실을 확인하며 구속영장을 신청한다.

사실 형사의 업무강도는 상당히 높다.

우선 휴일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지구대에 근무하는 지역경찰들은 3~4교대로 돌아가며 일하지만, 형사들은 비번일지라도 강력사건이 터지면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

당연한 노릇이지만 '예정된 사건'이란 없다. 게다가 강력사건은 주로 야간에 터진다. 집에서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이라도 한밤 중 전화 한통에 군말 없이 출동해야하는 것이 형사란 직업이다.

고생 끝에 용의자를 체포한다고 해도 일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체포는 형사 업무의 시작에 불과하다. 신문조서 작성 등 등 각종 서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과의 경우 한달 평균 처리건수의 정적수준은 10~15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서울시내 수사과 형사들은 평균적으로 1인당 한달에 40건씩을 처리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내 강남, 강서, 송파서 관할구역에서는 사건사고가 워낙 많이 발생해 형사들이 애를 먹고 있다.

업무환경도 열악하다.

용의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은 익히 알려진 바다. 위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과학수사대 소속 형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장 감식 과정에서 미세먼지를 흡입해 기관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고 조사 중 변사자의 피 등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형사들은 진급이나 승진 면에서도 불리한 처지에 놓여있다.

경찰도 다른 직장인들처럼 진급을 하려면 인사고과를 챙겨야하는데 형사들은 바쁜 업무 탓에 챙길 수가 없다. 무난히 승진하려면 정기적으로 열리는 직무교양교육과 무도교육에 참석해야하지만 당직과 야근에 치이다보면 매번 참석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승진시험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내근직 경찰이나 지구대 경찰에 비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일선 형사들로선 초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업무의 결과가 뻔히 들여다보인다는 점도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범인을 놓치기라도 할 양이면 담당형사가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에 한층 격화되고 있는 검경간 수사권 갈등도 신입 경찰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열심히 수사를 해도 검사의 수사 지휘로 반려되는 경우가 많아 의욕을 잃어버리는 형사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형사들, 고충 토로

일선 형사들도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 모 경찰서 강력팀 형사는 "4교대가 확실히 이뤄지는 지구대와 다르게 근무시간이 확실치가 않다보니 일단 가정생활이 안 된다"며 "아내 생일하고 자식 생일 챙기기도 힘들어 사람 도리를 못하고 사니 그게 힘들다"고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냈다.

가족과 단절을 염려한 일부 경찰들은 형사 일을 선택했다가도 결혼과 함께 다른 부서로 옮기도 한다. 총각이었던 형사가 결혼을 하면서 형사를 포기했는데 "이틀 사흘 밤새야 하고 신혼인데 아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한 강력팀장은 "다른 부서는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자기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형사의 경우에는 연속되는 업무가 많다 보니 쉴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가 않는다"며 "나 같은 경우도 어제 3일 만에 집에 들어갔다가 잠만 자고 바로 출근했다"고 푸념했다.

금전적 보상도 부족하다.

모 경찰서 형사팀 소속 경찰은 "시간 외 근무가 많은 형사들한테는 수당도 많이 줘야 하는데 지금 지급하는 시간당 2000원은 일반 회사에 비하면 너무 적은 금액"이라며 "보상이 크지 않으니까 형사하려는 사람도 적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경찰들에게도 형사는 도전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교통과에서 일하는 한 여성 경찰은 "강력계는 잠복근무가 많고 육아휴직도 3개월에 불과하다"며 "열심히 공부해 형사가 되고도 결혼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여자 경찰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나는 형사다 "니들이 손맛을 알아?"

이같은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선임들은 새파란 후배들의 형사 기피 현상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특히 교대근무에 정시퇴근을 하는 지구대 경찰을 선호하는 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들은 "지구대에 있으면 주로 고참들이 보고서를 작성해 신입들이 할 일이 많지 않지만 형사는 신입도 본인이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빨리 배울 수 있다" "지구대에 있다 보면 자기 일이 없기 때문에 어느 순간 타성에 젖는다" "지구대 경찰이 스트레스는 덜 받겠지만 많이들 매너리즘에 빠지더라" 등 조언을 남겼다.

실제로 일선 형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형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 강력팀장은 "어려움이 많은데도 형사로 남아있는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형사들은 '우리가 세상의 정의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힘들어도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참고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또 다른 강력팀장은 "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란 지론을 펼쳤다.

그는 "형사는 외향적이고 범인 검거를 사명으로 여겨야하며 계급장 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야한다"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폼생폼사로 사는 건 물론"이라고 강조했다.

형사만이 맛볼 수 있는 쾌감도 따로 있다.

한 형사과장은 "형사들은 범인에게 수갑을 채웠을 때 기분을 '손맛'이라고 부른다"며 "이 손맛을 봤을 때 경찰이 됐구나 실감하게 되는데 경찰이 되고도 진정한 손맛을 보지 못하는 건 어쩌면 불행한 일"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