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지키고 집행하는 군수가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준 공무원이라 할 공기업 직원들이 군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한쪽에선 "법 위에 군림하는 기장군은 반성하라"고 외치고 있고, 다른 쪽은 "부산시가 '묻지마 골프장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을 도저히 좌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뭔가 어긋나 있는, 상식에 맞지 않는 이상한 모습들이다.

이를 두고 "튀어서 인기를 끌려는 골통 군수의 정치 쇼" "자기 지역의 이익만 주장하면서 관철하려고 하면 지방자치가 정착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법과 규칙 대로 그냥 밀어붙인다고 해서 정책 집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요즘은 법보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동조론도 없지 않다. 어느 것이 옳을까? 기장 주민들 입장에선, 또 좀 더 큰 그림으로 부산 시민의 입장에선 어떤 선택이 더 지혜로울까?

◇기장군수의 1인 시위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는 지난 9일 오전 부산시청 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오 군수는 이 시위에서 "한 업체가 작은 연수원 하나 짓는 데서도 흙탕물 등이 발생해 민원이 제기되고 피해가 발생하는데 40만평이 넘는 대규모 골프장 공사가 또 진행되면 기장군만 환경파괴와 난개발의 고통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오 군수의 시위는 기장군 만화리와 용천리에 민간업체가 추진 중인 각각 9홀과 18홀 규모의 대중골프장 때문.

오 군수는 또 "부산시에서 군의 입장을 생각해 준 적 없고, 기장군민이 희생의 볼모도 아닌데 피해를 고스란히 안아야 하는 것을 군수로서 그냥 볼 수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현재 기장군에는 아시아드CC(27홀), 해운대CC(27홀), 베이사이드GC(27홀) 등 3곳의 회원제 골프장이 운영 중이며 동부산관광단지 내 골프장 1곳(18홀)과 대중골프장 2곳(27홀)이 추가로 조성 추진 중이다.

한 부산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허가 절차가 까다로워 주민 피해를 면밀히 검토해 추진할 계획"이라며 "부산과 기장군의 미래이기도 한 다양한 관광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해 주민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는 군수가 오히려 선동에 나서다니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공기업 직원들의 시위

이날 오전 11시 한국전력 경인사업단 직원 60여명은 부산 기장군청 앞에서 2013년 가동될 수출형 원전인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송할 765㎸ 송전선로 건설공사 허가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합법적인 국책사업 기장군은 허가하라", "전력수급 불안하다 송전선로 허가하라"….

최규택 한전 경인사업단 기장사무소장은 "기장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이겼다"며 "그러나 법을 지키고 집행해야 하는 군청이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민원을 이유로 신고리원전~경남 북부지역 간 765㎸ 송전선로 건설공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고법 행정2부는 지난해 11월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에 개발행위허가기준으로 인근 주민과 협의해야 한다거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주민의 반대를 무마하지 못했다고 기장군이 개발행위 허가를 불허하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며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 송전선로 철탑공사를 하지 못하면 2013년 가동될 수출형 원전인 신고리 2호기 가동도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 한전 측의 고민. 한전은 이달 말까지 기장군청 앞에서 계속 집회를 벌일 계획이다. 이에 대해 오 군수는 "주민과 합의 없는 송전선로 허가는 절대 불가하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법은 누가 지키나?

이런 이상한 시위들을 놓고 지역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아무리 정치인이라지만 자치단체 행정을 책임지는 군수가 법을 무시하는 것은 법치주의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책임한 행위다" "어느 정도 권위에 수긍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타협점을 못 찾고 극한적 투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도 군수가 그러면 어쩌나?"…. 이런 비판들이 많다. 윤은기 동아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기 지역의 이익만 주장하면서 관철하려고 하면 사업이 지연되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모두에게 손실을 입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반면 오 군수의 시위를 지지하는 쪽은 "법과 규칙대로 그냥 밀어붙인다고 해서 정책 집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만큼 광역단체, 상급단체라고 해서 기초자치단체의 의견을 묵살한다든지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며 "요즘 정책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려면 법보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