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의 '화원(畵員)'특별전(29일까지)에는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들의 작품이 망라되어 공부 삼아 여러 번 찾아가 보았다. 처음에는 연구자 입장에서 대가의 대표작들을 세무사찰하듯 꼼꼼히 따져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몇 번을 보다 보니 여타의 작품도 관객으로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1783~1837)은 순조 헌종 연간의 화원이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는 그림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는 초상화도 잘 그려 강이오 영정이 전하고 있다. 헌종2년(1836)에는 영흥 선원전의 태조 어진이 괴한에 의해 훼손되었을 때 이를 복원한 공으로 해주 등산진(登山鎭) 첨사(僉使)를 제수받기도 했다.

소당의 그림은 한결같이 고아한 기품이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유명한'낮잠'이라는 작품과 짝을 이루었던 '농필(弄筆)'이라는 작품이 처음 선보여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사진) 두 폭 모두 동자가 차를 달이고 있는 가운데 한 폭은 선비가 낮잠을 즐기고 있고, 한 폭은 창가에서 글씨를 쓰고 있다. 따질 것도 물어볼 것도 없이 그림의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고 느긋한 정서가 환기된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듯이 이처럼 부담없는 그림엔 마음이 편안해진다.

두 폭을 마주 놓고 보니 소당의 기량과 특징이 더욱 살아난다. 소나무와 인물표현에는 단원의 분위기가 들어 있지만 날카로운 필법이 아니라 부드러운 묵법을 사용하여 선비의 옷자락까지 엷은 먹으로 그린 것은 소당의 개성이다. 해맑은 담묵의 처리가 그의 주특기인 것이다. 일찍이 추사가 소당의 그림에 변격신출(變格新出)이란 평을 쓴 것은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소당은 이처럼 기량이 출중한 화원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작이 열 폭 남짓밖에 안 되어 조선후기 회화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우봉 조희룡은 '호산외사'에서 일본 사람들이 그의 화조화를 매우 좋아하여 동래관에서 해마다 구해갔다고 하였으니 혹 일본에 남아 있는지 눈여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