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함께 본격적으로 권력 전면에 등장한 이후 고비마다 '피의 숙청'을 통해 권력을 지켜왔다. 특히 2009년 1월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확정한 이후 처형과 의문사가 잇따르고 있어 3대세습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정은 등장 이후 최대 의문사(疑問死) 사건은 20년 넘게 당(黨) 인사를 주물러온 리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사망이다. '김정은 후견인' 장성택의 라이벌이던 리제강은 장성택이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하기 며칠 전인 작년 5월 말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리제강과 한편에 섰던 리용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작년 4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중국의 대북소식통은 "리제강은 이른바 '구(舊) 세력'의 핵심이었다"며 "김정은 측이 세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제거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숙청이 잇따르고 있다. 북한 경제의 사령탑이던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과 문일봉 재정상은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작년 4월과 작년 6월 각각 총살됐다. 박남기 후임이던 홍석형 계획재정부장도 올해 6월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뒤 행방이 묘연하다. 홍석형은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 전 내각 부수상의 손자다. 김용삼 철도상은 2004년 김정일 특별열차를 노린 것으로 알려진 평북 용천역 폭발 사고에 연루된 혐의로 작년 6월 처형됐다.

김정은이 정보와 경찰 등 공안기구부터 접수하면서 그 핵심 간부들도 잇달아 사라졌다. 국가안전보위부(국정원 격) 류경 부부장은 올해 초 장성택 행정부장 등의 견제를 받아 총살당했다. 주상성 인민보안부장(경찰청장 격)의 경우 올해 3월 전격 해임됐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 북한은 김정은 앞길에 장애가 될 만한 세력을 정리 중"이라며 "김정일 사망 애도 기간이 끝나면 다시 피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앞으로 숙청 가능성이 있는 세력은 김정은을 '애송이'로 볼 수 있는 군·당의 원로 그룹이다. 특히 김정일 시대 군부 핵심이던 오극렬(80) 국방위 부위원장과 가까운 세력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오극렬은 작년 9월 당대표자대회 때 당 정치국과 당 중앙군사위 어느 곳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특히 오극렬이 20년 이상 맡았던 대남 공작도 김정은 최측근으로 떠오른 김영철 정찰총국장에게 넘어갔다. 김정일 비서 그룹과 당 원로 그룹도 김정은에게 부담스런 존재다. 김정일도 김일성 비서 출신은 중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김정은의 '공포 정치'가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2010년 북한의 공개처형은 60회로 2009년에 비해 3배쯤 증가했다. 주민 소요에 대비해 진압 장비를 갖춘 '특별 기동대'도 지역별로 설치됐다.

김정일은 최고사령관 취임(1991년 12월) 이듬해인 1992년 10월 체제 비판 혐의로 소련 유학파 장교 20여명을 숙청해 군권(軍權) 장악에 활용했다. 김일성 사망(1994년) 직후인 1995년 4월에는 함북에 주둔하던 6군단의 수상한 움직임을 적발해 수백 명의 군인을 처형했다. 특히 김정일은 주민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던 1997년 당 농업비서 서관히를 '미제 간첩'으로 몰아 평양 시민들 앞에서 공개 총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