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강희 신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마지막 결정은 제가 했습니다. 지금 한국 축구가 처해있는 난관을 뚫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2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최강희(52) 신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전북 현대 사령탑 시절의 그와는 달라 보였다. 재치 있고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던 '봉동(전북 숙소가 있는 완주군 봉동읍) 이장'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임한 첫 기자회견을 시종일관 차분한 말투로 이어갔다.

최 감독은 "나의 소임은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라며 "계약 기간을 2013년 6월까지 해달라고 협회에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감독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가더라도 감독을 더는 맡지 않고 전북으로 돌아가겠다는 '깜짝 발언'이었다. "과연 내 판단대로 팀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말로 외부의 '입김'을 경계한 그는 "결국은 외국인 감독으로 가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할 말은 하는 최 감독다웠다.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에선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팀 전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오늘부터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2003~2004년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대표팀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한국이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다고 당신도 우리를 '세계 4강 전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선수들의 동기 유발도 강했고 협회의 지원도 엄청났다"고 하는 등 거침없는 직언으로 코엘류의 신임을 얻었다. 최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표팀 생활을 해보니 체질에 맞지 않더라. 난 꾸준히 경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최 감독은 이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위기에 처한 한국 축구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한국은 내년 2월 29일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 3차 예선 최종전인 쿠웨이트전에서 패할 경우 최종 예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 감독직을 계속 고사한다는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최강희호(號)는 어떤 모습이 될까. 최 감독은 쿠웨이트전을 맞아 "해외파보다는 K리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경기에 뛰지 못해 감각이 떨어진 해외파를 중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최 감독은 '애제자' 이동국의 발탁 가능성에 대해선 "이동국은 현재 K리그에서 첫 번째로 꼽는 스트라이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닥공(닥치고 공격)'을 대표팀에서도 이어나갈 것이냐는 질문엔 "최종 예선에선 한 골 차로 승부가 갈릴 때가 많기 때문에 수비적인 밸런스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축구계에선 최강희 감독의 전술적인 능력과 더불어 그가 짧은 시간 안에 가라앉은 대표팀 분위기를 끌어올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감독은 "선수들과 부대끼며 하나의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수원 삼성 코치 시절 '풍운아' 고종수를 '순한 양'으로 만들어 최고의 스타로 키워낼 만큼 지도자 경력 시작부터 선수 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비결은 마음으로 하는 소통이다. 최 감독은 2009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이 확정된 후 갑자기 양복 셔츠를 벗어 던졌다. 안에 입은 유니폼엔 부상 불운에 시달리던 김형범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선수를 감동시킬 줄 아는 지도자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전북의 브라질 출신 에닝요는 "감독님은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는 내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했다.

이날 신중하게 말을 이어가던 최강희 감독의 눈빛이 빛난 대목이 있었다. 최 감독은 "클럽팀을 맡으면 아무래도 선수 선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젠 내가 원하는 선수들을 마음껏 뽑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여 정상적으로 훈련한다면 아시아의 어떤 팀과 붙어도 자신 있다"며 "반드시 월드컵 본선 8회 연속 출전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