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세균전에 당했다-한국전쟁 미스터리 풀리나.' 지난 6월 국내 한 인터넷매체가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올린 기획기사 제목이다. 지난해 3월 국내 상당수 신문·방송들은 '6·25 때 미군 세균전 실험명령'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 자지라의 보도를 인용한 것이었다. 지금도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홈페이지에는 '미군 세균전 의혹'에 관한 국내 보도채널의 동영상이 걸려 있다. '미군의 6·25 세균전' 주장은 아직도 국내에서 수그러들지 않는 '반미(反美)' 공세 중 하나다.

하지만 6·25 연구의 대가인 캐서린 웨더스비(60)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부설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는 정면 반박한다. 옛 소련 대통령문서고에서 나온 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군 세균전' 주장은 중국이 6·25 교착 상황에서 반미 여론을 촉발하기 위해 기획하고 북한이 합세한 선전전이라는 것. 캐서린 교수는 8일 '국제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현대사의 재조명' 국제학술회의에서 이 문제를 상세히 밝힌 논문을 발표한다. 이 학술회의는 한국현대사학회·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하고 본사가 후원한다.

서울 성신여대에 초빙교수로 머물고 있는 캐서린 웨더스비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6일 “미국의 군사 개입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6·25 전쟁 당시 미군 행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인식마저 흐리게 하고 있다. ‘미군의 세균전’ 논란은 그 예”라고 했다.

캐서린 교수는 1991년 소련 해체 후 공산권 문서 연구를 통해 6·25가 내전이라는 수정주의 이론을 논박하고 김일성이 소련·중국 지원하에 기획한 남침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학자다. 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에 대한 일부의 정서적인 반감이 사실 관계에 대한 인식마저 흐리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미군의 세균전' 논란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번 논문을 발표하게 된 이유는.

"한국 내에는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아 새 논문을 발표하게 됐다. 이전 관련 논문이 당시 소련 정부의 시각에 집중한 데 반해 이번에는 한국 입장에서의 관점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경우 자료의 신뢰도가 결정적인데.

"일본 산케이신문이 소련 대통령 문서고 기밀 자료를 입수해 세균전 전문가인 밀턴 라이텐버그 메릴랜드대 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고, 라이텐버그 교수는 러시아 기밀을 오래 연구해온 내게 가져와 함께 분석했다. 다각도로 검증해본 결과 소련 내부 정보기관에서 나온 자료임을 확신하게 됐다. 이 문서는 스탈린 사후 소련 새 지도부가 그 전 국가안전부 장관인 이그나티에프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모은 자료로 보이는데, 죄목 중 하나가 '중국과 북한의 세균전 주장이 허위이며 이것이 소련의 국제적 위상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관련 정보를 지도부에 숨겨왔다'는 것이다."

―이 문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정치적 숙청에 그치지 않고 소련 정부는 스스로 '세균전' 공세를 중단하고 중국·북한에도 중단을 지시했다. 심지어 당시 소련 지도부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책임을 물어 힐책했으며 마오 등은 당혹해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북한은 소련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추후 자율성이 커지면서 '세균전' 주장은 다시 고개 들게 된다."

―전문가들 사이 결론은.

"1960~80년대에 세균전·화학전에 대한 국제 포럼이 많았다. 소련 학자들도 참여했지만 중국에서 일본군이 사용한 사례는 이야기하지만 6·25 때 미군 관련 내용은 이야기한 적 없다."

―알 자지라나 외신 보도가 계속되는 이유는?

"사람들은 최근 이라크전을 비롯한 미군의 군사 개입에 대한 분노 때문에 다른 것도 미루어 짐작하려 한다. 우리는 어떤 사태를 볼 때 자기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뭔가를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실제 6·25 당시 세균무기가 사용됐느냐의 사실문제와 미군의 개입에 대한 반감은 구분돼야 한다."

―중국 정부의 현재 입장은.

"미 정부는 소련 문서를 중국 정부에 보여주며 세균전 주장과 전시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반 대중을 상대로 선전을 적극적으로 중단하지는 않고 있다. 단둥 전쟁기념관에는 아직 세균전 전시물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들었다."

―중국이 거짓 선전전을 벌인 의도는.

"당시 한국전쟁은 교착상태였고 중국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당시 중국 북동부와 북한에서 열악한 위생·영양 상태로 인해 질병이 만연했다. 중국으로서는 대중의 대미 항전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반미 선전전이 필요했다. 미군의 폭격을 가리켜 세균 폭탄이라고 했고 대중은 그렇게 믿었다."

―6·25에 대한 미국 내 수정주의 시각에는 그동안 변화가 있나.

"대부분 사람들은 새로운 증거를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정주의는 사실 베트남전의 반발에서 시작됐다. 나를 포함한 당시 세대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두고 명분 없는 희생이라며 격분했다. 그 반감이 한국전쟁에 적용된 것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냉전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반대 차원에서 보려고 한다." 하지만 공산권 문서들이 나온 이후 지금은 주요 수정주의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도 다소 절충적 입장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