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유키코 日 와세다대 교수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부탄 국왕 부부가 일본 국민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젊고 잘생긴 임금님의 신혼여행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일본 국민이 환호한 배경에는 부탄이 내건 '국민총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의 최대화'에 대한 공감도 있었다. GNH는 물질적 척도인 국내총생산(GDP)과 달리 정신적 행복도(度)를 나타낸다. 좀 오래된 자료이지만 지난 2005년 사회학자들이 조사한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국민이 "행복하다"고 대답한 비율을 살펴보면, 1위가 뉴질랜드였고 미국은 9위, 독일은 36위로 우간다보다 낮았다.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가 상위권에 들었지만 한국은 23위, 일본은 24위였고, 중국은 45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GNH에 대한 공감은 올봄 대지진의 비극을 겪은 일본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는 대통령부(府)에 특별위원회를 두고 국민의 행복 문제를 다루고 있고, 미국 경제학계에선 두툼한 월급봉투가 보장되던 금융에서 경제개발 분야로 인기 분야가 옮아가고 있다.

GNH는 주관적 요소가 많이 개입되지만 GDP와 교집합을 구성하는 사회정책 측면만 보면, 한국 같은 나라는 아직 정책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정부와 민간을 합친 사회 지출은 경제 규모(GDP)와 비교해 2007년 겨우 10%를 넘었다. 이런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멕시코·터키에 이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사회정책에 의한 소득 격차 시정 효과와 빈곤 감소 효과 역시 두 나라를 제외한 25개국 중 최저였다. 빈곤율도 다른 나라에서는 정년 후인 66~75세에 완만하게 상승하지만 한국에서는 51~65세에 올라가기 시작해 75세 이상에서는 OECD 평균의 2.5배에 다가선다. 한국 가계의 교육 투자는 OECD 최고이지만 정부의 공적 지원은 최저 수준으로, 이는 가계의 교육 부담을 심각하게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눈에 띄게 상승하는 청소년 자살률, OECD 최고 수준인 이혼율 같은 행복지수 감소를 알리는 지표 역시 제 기능을 못하는 사회정책이 배경에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인구 구조가 인도네시아 정도로 젊다면, 앞으로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정책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베이비붐 세대가 사실상 은퇴 연령에 접어들고 있고 출생률은 세계 최악의 수준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행복 사회를 재설계하는 일을 미래로 늦출 수 없는 것이다. 2012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세계경제 위기 극복만이 아니라 행복 사회의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이벤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정책은 반드시 시행해야 할 일이지만 부탄 같은 소국(小國)과 인구 수천만명 이상의 중(中)규모 국가, 1억명 이상의 대국은 실시 비용과 중앙·지방 관계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싱가포르가 일찌감치 완성한 전(全) 국민 주택 보유 정책을 중규모 이상 국가가 실현하기는 어렵고, 사회 서비스에 대한 대도시와 지방의 요구가 크게 다른 나라는 사회정책을 치밀하게 분석해 차등을 두고 집행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 또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나라는 정부가 미래 세대의 연금·의료를 지지하는 정통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 경우 민간 보험이나 부동산 정책 등 적절한 금융·시장 정책을 조합해 나갈 수밖에 없다. 안정된 정규직을 구할 수 없어 사회보장 제도에 편입되기 어려운 청년층이 팽창하고 부유한 고령자가 급속히 증가하는 현실에서는 상속을 통해 자산을 아래 세대에게 이전하는 정책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요컨대 사회정책에서는 한국이 경제성장 국면에서 특기로 자랑해온 '벤치마크'의 모델은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출산 연령에 도달하는 앞으로 몇 년은 여성의 근로 환경 정비 등을 통해 심각한 출생률 하락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여기에 두고, 인구 구조의 변화를 직시하는 사회정책 메뉴를 정책 실시에 따른 비용과 함께 솔직히 제시하여야 한다. 이것은 잘하면 내수(內需) 기반을 확충해 세계적인 경제 위기 국면에 대응하는 결과로도 연결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에 의한 성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커졌고 너무나 성숙해졌다. 단순한 정신 무장론이나 현실도피가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사회정책을 일대 쇄신하는 길, 그래서 국민총행복지수를 차츰 높여가는 길로 한국은 이미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