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람들이 마더 킴 때문에 저를 기억하지만, 나중에는 저 때문에 엄마가 세상에 알려지도록 할게요. 약속합니다."

지난 19일 밤 11시 서울 여의도의 월드비전 사무실. 특별한 인연의 모자(母子)가 만났다. 배우 김혜자(70)씨가 지난 1997년부터 후원했던 방글라데시 소년 제임스 라나 바이다야(James Rana Baidaya)가 스물다섯 살의 헌칠한 청년이 돼서 '엄마'를 찾아온 것이다. "마더 킴, 훌륭한 청년이 돼서 다시 뵙고 싶었어요.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은 오래도록 포옹을 풀지 못했다.

김씨는 1997년 월드비전을 통해 제임스와 결연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교육만 간신히 마칠 수 있었던 열두 살 소년은 김씨가 4년간에 걸쳐 후원한 덕에 중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고 나중에 대학까지 진학했다.

배우 김혜자씨가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했던 방글라데시 제임스 라나 바이다야(25·왼쪽)씨와 반갑게 눈을 맞추고 있다. 대학생이 된 제임스는 김씨를 ‘마더 킴’이라고 불렀다.

이 모자의 만남은 두 번째다. 11년 전인 2000년 월드비전이 주최한 '기아 체험 24시'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은 처음 대면했다. 그러나 김씨가 당시 여러 아동을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임스는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제임스는 무대에 오른 김씨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학업을 놓으면 안 된다. 내가 힘을 보탤 테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가슴속에 깊이 새겼다.

제임스는 '한국인 엄마' 말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이 쑥쑥 올랐다. 5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방글라데시 국립 쿨나(Khulna)대학에 합격해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제임스는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이 모든 것이 마더 킴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를 마칠 때쯤 되자 갑자기 한국에 있는 엄마가 보고싶어졌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 두 사람을 다시 이어준 건 '페이스북'이었다. 제임스는 '마더 킴'이 배우였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지난 7월 페이스북에서 '김혜자'를 검색했다. 그는 마더 킴이 이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는 팬페이지에 '1997년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던 저를 학교에 보내주셨고, 생활비를 지원해 주셨어요. 엄마의 도움으로 오늘날까지 왔고,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내용은 여러 사람을 거쳐 결국 김씨에게 전달됐다.

김씨는 "한국에서도 미국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훌륭한 대학교수가 된 분들이 있다"며 "제임스도 이들처럼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눠주는 미덕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말을 들은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NGO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방글라데시에 돌아가 국제구호기구를 만들 거예요. 마더 킴에게서 받은 사랑을 세상에 돌려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