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호(號)가 흔들리고 있다.
15일 레바논과의 3차 예선 5차전 1대2 패배는 단순한 스코어를 떠나 최악의 내용으로 실망감을 안긴 경기였다. 한때 다이내믹한 경기 스타일로 '만화축구'란 별명을 얻었던 '조광래 축구'는 최근 납득할 수 없는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공상만화축구'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점점 부정확해지는 패스
숫자만 봐도 얼마나 졸전이었는지 알 수 있다. 레바논과의 5차전 경기를 분석한 ㈜비주얼스포츠(대표 김창훈)의 데이터를 보면 한국은 이날 패스 플레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407개의 패스를 시도해 283개를 연결했다. 69.5%의 저조한 성공률이다.
예선 1차전부터 비교해보면 차이는 확연하다. 한국은 1~5차전의 패스 성공률이 82.0→82.4→78.6→75.0→69.5(%)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성공한 패스 숫자 역시 1차전 477개에서 5차전엔 283개까지 내려갔다.
전방 지역으로 들어가는 패스의 정확성도 문제였다. 레바논과의 5차전에서 한국은 경기장을 3등분 했을 때 상대 진영 쪽 1/3 지역으로 190개의 패스를 넣어 100개(52.6%)만 성공했다. 3차전(63.9%)과 4차전(62.5%)에 비해 떨어지는 수치다. 그만큼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 수 없었다.
◇화를 부른 포지션 파괴
결국 조 감독의 무리한 포지션 파괴 전략이 독(毒)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레바논전은 포지션 이동의 난맥상(亂脈相)을 여실히 보여준 한판이었다. 조 감독은 지난 예선 1~3차전에서 평균 91%의 성공률로 경기당 71개의 패스를 뿌려준 기성용이 어지럼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UAE와의 예선 4차전부터 홍정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주로 중앙수비를 보던 홍정호는 낯선 포지션에 적응하지 못했다. 홍정호는 4차전에서 32개(성공률 82%), 5차전에선 24개(73%)의 패스를 연결하는 데 그쳤다. 확실한 패스 줄기가 사라지자 대표팀의 공격 전개에 구멍이 뚫렸다.
최전방에서 주로 뛰던 손흥민은 레바논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이 요구하는 2선 침투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주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왼쪽 수비로 나섰던 이용래는 후반 들어 중원으로 복귀했다가 다시 왼쪽 수비로 내려가는 등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용래가 지킨 왼쪽 측면은 레바논의 주요 공략지점이었다.
박주영·이청용·기성용이 빠진 비상 상황에서 포지션 파괴로 '플랜B(차선책)'를 찾으려 했던 조 감독의 구상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해외파에 너무 관대하다
이는 조광래 감독의 선수 발탁 문제로도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선수 개인 기량도 중요하지만 포지션의 전문성을 고려해 엔트리를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기성용이 빠졌을 때 수비수 홍정호를 끌어올릴 것이 아니라 기성용과 같은 포지션의 김정우 등을 대체요원으로 선발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후 측면 수비수 포지션에 공백이 생기자 조 감독은 그동안 측면 수비요원 대신 공격수인 조영철과 중앙 미드필더 김재성 등을 기용하는 실험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외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도 비판의 대상이다. 한국 축구는 최근 박주영과 지동원·구자철 등 해외파 선수들이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한 이후부터 동반 추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