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 "젊은 세대들이 보여준 뜻을 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특히 20~30대에 다가가는 정책과 소통의 장을 만들어 그들의 마음을 얻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범야권 박원순 당선자에게 20대에서 39.2%포인트, 30대에선 52%포인트나 뒤졌다. 작년 6·2 서울시장선거 출구조사 시 한명숙 오세훈 후보 격차가 20대 22.7%포인트, 30대 36.4%포인트였으니 1년 4개월 사이 그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한나라당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 일자리를 만드는 대통령이란 구호로 모든 세대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GDP가 올라도 세계 금융위기에서 먼저 벗어났다고 아무리 자랑을 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고, 젊은이들은 대학을 나오자마자 청년백수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사는 처지에 몰렸다. 이 젊은 세대가 이번 안철수 바람의 진원지다. 한나라당이 젊은 세대를 붙잡으려고 다급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보다 급한 것은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의 허리'라고 할 40대의 처지와 심정을 먼저 헤아리는 일이다.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른 2002년 대선에서 40대의 두 후보 간 지지 격차는 불과 0.2%포인트였다. 2007년 대선 때 40대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민주당 후보보다 23%포인트나 더 많은 지지를 몰아주었다가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선 거꾸로 야당 후보에게 14%포인트 더 많은 지지를 보내는 쪽으로 돌아서 버렸다. 이번엔 나 후보 지지가 32.9%, 박 당선자 지지가 66.8%로 그 격차가 33.9%포인트로 벌어졌다. 치솟은 집값과 과외비에다 벌써부터 눈에 어른거리는 명퇴(名退)의 그림자에 쫓기는 40대는 고달픈 세대다. 한나라당이 이들의 마음도 얻지 못하면서 그보다 젊은 세대에게 다가서 보겠다는 건 과욕(過慾)이다.

한나라당은 이번에 서울 25개 구 중 강남 서초 송파 용산을 제외한 21개 구에서 졌다. 강남 서초 다음으로 중산층 밀집지역인 송파와 용산에서도 불과 2.5%포인트와 4%포인트밖에 앞서지 못했다. 중산층의 반(反)한나라, 탈(脫)한나라 정서는 그만큼 심각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두터운 중산층에서 자신들도 노력하면 그 정도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본다. 두터운 중산층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 구실을 한다. 보수든 진보든 중년층의 지지와 함께 중산층의 마음을 얻어야 선거에서 이긴다.

이번에 나 후보는 서울 유권자 22.7%의 지지를 얻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 심판 분위기가 일던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얻은 표도 유권자의 23%였다. 한나라당 고정표가 그 부근 언저리인 듯하다. 한나라당에 이 고정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지만 거기에만 집착해선 결코 대세(大勢)를 잡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중년층과 중산층에게 나라의 장래를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을 주는 정당, 자신과 자식들의 미래를 의탁해도 되겠다는 신뢰를 주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투표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투표장에 젊은이들 줄이 조금만 길어져도 그만 자지러드는 겁쟁이 정당이란 오명(汚名)도 벗어날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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