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인간들끼리만 욕망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그리는 데 한계를 느낀 탓인지 최근 연극 중에는 인간이 아닌 동물·식물·곤충 등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들이 곧잘 눈에 띈다. 인간이기주의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그들이 소환될 때 연극무대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생명의 신선한 떨림이 찰나적으로나마 회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공동제작한 '벌(배삼식 작·김동현 연출)'은 벌떼들이 얘기를 끌어간다. 한 양봉마을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던 벌떼들은 요양차 내려온 말기 암환자 온가희의 온몸에 떼지어 내려앉는다. 죽어가는 그녀의 몸에서 힘을 얻고 혼인비행을 통해 생명을 얻은 새 여왕벌은 벌떼를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벌’에서 말기암 환자 온가희의 몸을 온통 뒤덮은 벌떼.

표면적으로 이 극의 주인공은 벌떼가 까맣게 내려앉은 말기암 환자 온가희일 수 있다. 죽어가면서도 새 생명을 위한 터전으로 제 몸을 내 주는 온가희는 엄중한 윤리로 무장한 희랍비극의 여주인공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사르트르의 '파리떼'의 실존주의자 오레스테스를 떠오르게도 한다. 그러나 수벌 같은 택배기사에게 구애하며 스스로 여왕벌을 배태하는 온가희는 그들보다 더 따뜻하며 생산적이다.

그녀는 생명이라는 자연의 불가해한 기적을 온몸으로 수용하며 극의 진정한 주인공의 자리를 길 잃고 병들었던 벌떼들에게 내어준다. 이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에 압도당하고 해석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암환자나 벌떼 못지않게 각자의 병과 치유의 욕망을 품은 주변 사람들의 현실적 삶 역시 함께 어우러진다. 따라서 이 특별한 공연에서 눈여겨볼 점은 좀 산만하기는 하지만, 말기 암환자-벌-꽃-젊은 남자-양봉업자-간병인-학자-외국인 노동자 등이 서로 교감하며 이루는 끈이며, 그 끈을 타고 흐르는 생명과 고통과 삶의 불가해한 에너지이며, 그리고 그것을 감지하건 못하건 앞으로도 무심히 오래도록 영위될 일상적 삶들이다.

이 공연의 성공여부는 인간―벌―꽃 같은 것들 사이의 물질적·비물질적인 생명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하며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주로 막간극의 코러스에게 맡겨졌던 그 임무는 아쉽게도 반쯤만 성공한 듯하다. 과수원 마을의 일상적 삶과, 공상동화와, 과학이야기와, 희랍비극과, '세상에 이런 일이'와, 환경메시지와, 관념적 사유가 뒤섞인 이 특별한 연극의 톤을 창출하는 일 역시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공동체를 향한 작가와 연출가의 신선하고 순수한 열정은 분명 연극에서만 가능한, 어떤 순간의 떨림을 창출했다.


▶연극 '벌'=3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