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여자 골프 선수들의 '미국 무대 100승 드라마'가 마침내 완성됐다. 구옥희, 박세리, 김미현, 신지애, 최나연…. 23년간 34명의 주인공이 등장한 환희와 눈물의 드라마였다.

1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골프장(파71)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사임 다비 대회에서 최나연은 세계 랭킹 1위 청야니(대만)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7월 유소연의 US여자오픈 제패 이후 석 달 넘게 기다려 온 '100승' 소식이었다. 지난해 7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한 한국계 여자 선수들은 미국에서도 100승 고지에 오르며 세계 최강의 브랜드 파워를 자랑했다.

1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끝난 미LPGA 투어 사임 다비 대회에서 한국계 선수 통산 100번째 우승을 달성한 최나연이 축하 물세례를 받고 있다. 최나연은 막판 추격전을 편 세계 랭킹 1위 청야니(대만)를 1타 차로 따돌렸다.

한국 여자 골프의 시작은 초라했다. 일본의 히구치 히사코가 아시아 출신 여자선수로는 최초로 미LPGA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것에 자극을 받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여자 프로부를 만들었다. 1978년 프로 테스트에 나간 여자 선수 10여명은 대부분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캐디 출신이었다. 강춘자, 구옥희 등 당시 선수들은 "손님에게 빌린 골프채를 들고 맞지 않는 골프화를 빌려 신은 채 테스트에 나갔다"고 했다.

미국 프로무대 첫승의 주인공도 구옥희였다. 1988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미 LPGA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터콰이즈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올림픽 열기에 빠져 있던 국내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4년과 1995년에는 고우순이 일본에서 열린 미LPGA투어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하며 계보를 이었다.

골프가 국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수퍼스타' 박세리의 등장부터였다. 삼성의 후원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한 박세리는 1998년 5월 메이저 대회인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머쥐더니 그해 7월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연장 20홀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새하얀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리던 장면은 IMF 사태로 상심해 있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 쉴 새 없이 승전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혼자 25승을 올린 박세리는 2007년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박세리의 성공에 자극받아 미국에 진출한 김미현·박지은·한희원·장정 등도 우승 대열에 합류하며 한국 여자골퍼의 힘을 보여줬다. 이들의 성공 뒤에는 캐디로, 매니저로, 운전기사로, 코치로 1인 다역을 해낸 '골프대디'들의 헌신이 있었다.

박세리와 김미현 등이 주춤할 때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 박세리의 활약을 TV에서 보고 골프채를 잡은 '세리 키즈'들이었다. 신지애는 2009년 미 LPGA투어에 정식 데뷔하면서 신인상·상금왕·공동다승왕을 휩쓸었다. 지난해 5월에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최나연이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차지했다.

이제 미LPGA 무대에는 박세리와 '세리 키즈'들을 합쳐 40~50명의 한국계 선수들이 출전한다. 외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만이 갖고 있는 정서적인 연대와 독특한 문화 때문에 선수 한 명이 아니라 집단 전체와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한다.

[[InfoGraphics] LPGA 역대 한국(계) 우승 선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