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1917~1995)은 동서양을 잇는 세계적 작곡가라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뒷모습은 북한에서 '애국자'로 칭송받은 대표적인 친북 인사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전신)는 지난 1992년 "윤이상은 1963년 아내 이수자(84)와 함께 입북, 간첩 교육을 받고 독일로 귀환, 월북한 친구 최상한의 장남 최정길을 독일로 유인해 북한 공작원에게 인계하는 등 북한의 조종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 문화 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윤이상은 1985년 오길남씨에게 입북(入北)을 권유했고, 1년 뒤 북한을 탈출한 오씨에게 "재입북하지 않으면 북한에 남아있는 처자식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1963년부터 1991년 10월까지 17차례 입북하는 등 1995년 사망할 때까지 수십 차례 북한을 오갔다.

1984년 평양에 북한의 해외 문화 공작 조직인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설립했고, 김일성 75회 생일을 기념해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곡을 바쳤다. 평양에는 '윤이상 음악당'이 있다. 1992년 북한에서는 윤을 모델로 해외로 망명, 친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북한 체제를 홍보하는 영화 '민족과 운명'이 만들어졌다.

조선로동당출판사가 2000년 간행한 김일성 교시집(敎示集) '재(在)서독 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 등에 따르면 김일성은 윤이상을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애국지사'로 격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