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2명에 달하는 국내 에이즈 환자(감염인) 중 10년 이상 감염된 사람의 61%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는 26년째 살아남아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에이즈라는 천형(天刑)이 의학기술의 발달로, 걸리면 곧 사망하는 병이 아니라 '만성질환'처럼 관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에이즈 감염인이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거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원희목(한나라당) 의원은 5일 "질병관리본부의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6292명의 에이즈 감염인 중 10년 이상 장기 생존하고 있는 사람이 978명에 달했다"면서 "이는 10년 이상 감염된(2001년 이전 감염) 사람 전체의 60.8%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1985년 29세의 나이로 에이즈에 감염돼 26년째 생존하고 있는 사람을 비롯해 20년 이상 살고 있는 사람도 59명에 이른다. 또 한국인의 평균수명(79세)보다 5세 많은 84세의 에이즈 감염인도 4명에 달했다.

원 의원은 "전체 환자의 55.5%에 해당하는 3496명이 5년 이상 생존하고 있는 등 '에이즈에 걸리면 수년 내에 반드시 사망한다'는 일반의 인식은 더 이상 맞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에이즈에 감염되어 사망한 사람은 1400여명으로, 전체 감염자(7700여명)의 18%다.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고 있는 이유는 새로운 치료약이 계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1990년대에는 에이즈 약이 한 종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약의 작용 방식에 따라 네 종류, 총 31개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보건당국의 관리방식도 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987년부터 몇 년간은 에이즈 환자를 격리 치료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에는 에이즈 감염인들이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치료를 받도록 했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추적관리도 완화했다. 이젠 감염자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도 익명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원 의원은 그러나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초기 인식은 바뀌지 않으면서 감염자가 가족과 단절되고 직장을 포기하거나 취업에 불이익을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 후 가족 관계가 손상·단절됐다는 사람이 33.2%에 달했고, 에이즈로 인해 직업을 그만둔 경우도 43.8%였다. 취업에도 차별을 받으면서 에이즈 감염자의 절반(48.9%)이 월 50만원의 소득도 올리지 못하는 극빈 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